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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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시후와 베이징 올림픽 삼림공원은 왜 작은 지방 도시의 공원만큼 나를 치유하지 못할까

항저우 시후와 베이징 올림픽 삼림공원은 왜 작은 현의 공원만큼 나를 치유해 주지 못했을까

한 누리꾼이 이렇게 썼다.
지난 2년 동안 윈난의 작은 현에서 지내고 있다. 소박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대자연이 있는 이곳은 나의 마르크스와 장자의 사상 체계를 수행하기에 꼭 알맞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예전에 머물렀던 수많은 아름다운 곳들, 항저우 시후나 베이징 올림픽 삼림공원 같은 곳은 모두 작은 현의 공원보다 더 아름다웠는데, 왜 그때는 나를 치유해 주지 못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다. 한편으로는 당시 업장이 너무 깊어 바깥에서 답을 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곳들이 여전히 ‘작은 나, 아집, 아상, 중생상’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늘 생각하곤 했다. 시골 소도시 출신으로 문제 풀이에 매달려 온 내가 어떤 조건들을 충족했기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 게다가 주변의 관광객들도 내 분별심과 중생상을 자극했다. 아름답고 부유하고 세련된 관광객들이나 중상류층 사람들이 그랬다. 탄탄한 몸에 세련된 옷을 입고 친구들과 어울려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늘 내가 촌스럽고 뚱뚱하고 게으르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늘 이렇게 바라보곤 했다. 시후는 정말 아름답다. 시후는 정말 특별하다. 역시 시후답다. 항저우는 정말 특별하다. 역시 항저우답다.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모두 ‘항저우 시후’, ‘베이징 올림픽 삼림공원’이었지, 대자연이 아니었다. 시후라는 ‘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진 찍기’와 ‘추억 남기기’에도 빠져들고 집착했다.
작은 현의 공원에서는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공원에서 소박한 옷차림을 한 평범한 사람들 역시 모든 것이 아무런 조건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내게 알려 준다. 대자연을 보고, 나무와 잎, 새와 물고기와 꽃, 마른 가지와 낙엽과 구름을 본다. 나는 세부에 몰입하고, 전체에 몰입한다. 아상도 없고, ‘공원’이라는 상도 없다.
도가에서는 얻기 어려운 것을 귀하게 여기지 말고, 꾸밈없는 본모습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