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의 전장은 마음속에 있다—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친구이자 적은 자기 자신이다
一、우리 세대의 전장은 마음속에 있다
현시대의 주요 모순은 원자화된 개인이 사이버펑크와 크툴루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데 있다. 각 개인에게는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과 사물화·소외 사이의 모순,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없다는 모순, 드러눕자니 제대로 누울 수도 없고 경쟁하자니 더는 경쟁할 힘도 없다는 모순이 있다.
이 세대의 공통된, 시급히 맞서야 할 적은 추상적인 적이다. 자본주의, 체계, 대타자다.
누가 우리의 적인가? 누가 우리의 친구인가? 이것이 혁명의 으뜸가는 문제다.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친구이자 적은 자기 자신이다.
전자는 본연의 나, 본래의 온전함, 누구에게나 있는 불성·신성·영성이다. 인본주의, 선종, 영성 분야는 이 부분에 강하다. 후자는 업장이다. 작은 자아, 가혹한 초자아, 사회적 규율, 대타자, 잘못된 세계관·인생관·가치관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심리학·불교학·실존주의는 이 부분에 강하다. 마르크스와 장자는 두 부분 모두에 강하며, 체계적이고 변증법적이어서 평범한 사람이 스스로를 구하는 철학이다.
영세·소자본가 계층은 업장이 깊어 적과 친구,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떻게 자기 자신의 친구가 되고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어느 부분이 자신을 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적으로만 여기며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하고, 미루기만 한다고 하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을 친구로 여기지 않고 적으로만 대하는 이 가혹한 작업 감독이야말로 지금의 큰 적이며, 대타자의 징세 청부인이다. 자신과 맺는 관계가 타인과 맺는 관계의 상한선이다. 자신과 친구가 아니면 당연히 친구도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훨씬 강하다. 그들은 대타자의 노예 노동자이지, 고분고분한 백성이 아니다.
본연의 내가 든든한 동맹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본연의 나야말로 본체다. 자기 본성의 본래의 온전함을 믿고, 깊은 마음속에서 살아가며, 마에 사로잡히는 순간과 작은 자아의 업장이 어지럽게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적 소모를 일으키는 생각들이 오가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과거의 자신과 연결하고, 끝까지 자신으로 살아가며, 자기 뒤통수를 치지 말아야 한다.
각자는 적의 후방에서 싸우는 유격대다. 주변은 영세·소자본가 계층에 둘러싸여 있고,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통일전선에는 원칙성과 유연성이 모두 강하게 요구된다.
우리 세대의 전장은 마음속에 있다. 우리는 자신의 정신세계, 일터, 주변 환경에서 날마다 대타자·크툴루와 맞붙어 싸우며 내면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우리의 장정은 노라처럼 집을 나서서 자기만의 쇼생크 감옥을 탈출하는 일이며, 자기 영혼의 오디세이다. 저마다 자신만의 마경이 있다. 우리가 피워 올리는 봉화, 날려 보내는 흰 비둘기, 울리는 종소리는 다른 고립된 섬들에 끝까지 버틸 용기를 준다. 우리 세대가 물러나 지킬 수 있는 징강산은 자신의 가슴이고, 깊이 일굴 수 있는 난니완은 자신의 일이며, 들어 올릴 수 있는 깃발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작은 불씨들이 서로를 비추며 빛난다.
우리 세대에게는 기대할 외부의 혁명이 없다. 우리가 겪어야 할 것은 내부의 혁명, 영혼의 혁명이다.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의 세대들보다 더 어렵다. 우리 세대는 어떤 거대한 산이 무너지는 광경도 보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마음속의 거대한 산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二、자기 자신으로 잘 살아가며, 자기 인생의 각본 안에서 즐겁게 돈 벌기
개인의 문제는 모두 사회의 문제다. 한 사람이 자신의 곤경을 뚫고 길을 열면, 그는 세상의 큰 도의 일부를 대표하게 되며,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큰 도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억지로 뜻을 두지 않고 도와 하나가 되어 자신을 이루는 일의 주제는 인생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실현하자면 내면에서는 신나게 놀고 즐거워하며, 외적으로는 자본과 돈과 힘을 갖추는 것이다. 우선 즐거워야 한다. 즐겁지 않으면 이미 진 것이다. 가난해도 즐거우면 괜찮다. 돈을 벌려고 불행해지는 것은 전형적인 루저다. 즐겁게 지내면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당당하게 서서 돈을 버는 데서 더 나아가 놀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위둥라이, 판전둥, 량원펑은 왜 사람들의 열광적인 숭배를 받는가.
타인과 역사를 바꿀 수 없다면 인생의 승자가 되는 것쯤은 안 되겠는가. 마르크스와 장자를 연구해 얻은 답은 구원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기 발전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돈을 자신의 주체성과 자유가 이루는 선순환 안에 녹여 넣는 것이다.
三、이 세대 마르크스주의자의 과제는 놀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레닌과 마오쩌둥 세대에게는 총구에서 정권이 나왔다. 그렇다면 총은 좋은 것인가, 더럽지 않은가?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마르크스와 장자의 사상 체계는 평범한 사람의 철학이다. 총 없는 서민이라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존재에는 조건이 없으며, 다른 사람보다 열등하지도 않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여건이 될 때 총을 확보해야 한다. 총과 힘과 자본은 올바른 사람의 손에 있어야 한다.
지금은 돈주머니에서 정권이 나온다. 돈이 없으면 생존할 수도, 발전할 수도 없다. 모든 이론과 이상과 자선은 빈말이 된다. 이 세대 마르크스주의자의 주제는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은 올바른 사람의 손에 있어야 한다. 그 세대는 총을 확보해 산을 차지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노동자·농민의 무장 할거를 이루었다. 이 세대는 돈을 벌고, 경제적 해자를 차지해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
이 시대의 주제는 돈이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한다면 더더욱 돈을 이야기해야 한다. 옛 왕조의 유민을 코스프레하며 아직도 청나라 시절 이야기를 할 일이 아니다. 돈 얘기만 나오면 낯빛이 변하고, 돈 냄새에 코를 막으며, 고행승처럼 돈을 손에 대지 않는다고 해서 고결함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다스리되 돈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레닌주의가 총을 확보하되 총에 휘둘리지 않는 것과 같다. 차원이 다른 수준과 시야가 있기에 총과 돈을 더 잘 다스릴 수 있다. 그 세대의 과제는 총과 권력에 부패하지 않는 것이었고, 이 세대의 과제는 돈을 손에 넣되 돈에 부패하지 않는 것이다.
돈을 벌려면 돈의 법칙을 연구해야 한다. 첫째, 괴롭게 아등바등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으며, 고통스럽고 수명도 짧아진다. 둘째, 가치투자를 하고 엄격하게 선별해야 한다.
돈은 노동의 응결이며, 세계를 조직하는 방식이자, 모든 사람의 등 뒤에 있는 채찍이다. 사람들이 모여 일하고 살아가는 곳은 모두 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모든 조직은 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돈은 세계의 실상의 일부다. 실사구시하려면 돈을 제대로 연구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돈주머니를 쥐는 것은 일반적인 엘리트주의자나 부자와 무엇이 다른가?
답하기는 쉽다.
- 마르크스주의자가 총을 쥐는 것은 일반적인 군벌이나 도적과 무엇이 다른가?
- 마르크스주의자가 인생의 승자가 되려는 것은 인생의 승자가 되고 싶어 하는 여느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들이 이기려는 상대는 동년배이며, 그들이 얻으려는 것은 외부의 인정이다.
- 위둥라이가 돈주머니를 쥐는 것은 다른 사장들과 무엇이 다른가?
四、고생을 근본으로 삼는 것은 마에 사로잡히는 일이다
괴롭게 아등바등하는 것이 잘못이라거나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고생을 근본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소도시 출신의 문제풀이 수재식, 헝수이중학교식, 공대식, 중위권 학생식, 관료식 사고는 고생을 근본으로 삼는다. 고난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내가 고생을 견딜 수 있다고 해서 고생을 즐거움으로 삼고 평생 고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마르크스와 장자의 사상 체계 및 심리학, 가치투자는 모두 큰 도이며, IT와 AI 역시 큰 전문 분야다. 하지만 이것들은 나를 제한하고 괴롭게 아등바등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한 것이다. 마르크스와 장자, 심리학을 연구하는 일의 긍정적인 의미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끼친 영향과 제약도 적지 않다. 고난, 업장, 트라우마, 위기, 침륜을 지나치게 많이 연구했다. 모든 중생이 괴롭다는 문제를 너무 많이 연구하고 거기에 얽매였다. 레닌과 펑더화이 사령관 같은 청교도식 엄격한 계율과 돈에 대한 혐오가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을 쥐고 거침없이 후련하게 살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먹을 때는 먹고 마실 때는 마셨다.
나는 2018년과 2019년에 가치투자에서 도가로 나아갔고, 마르크스와 심리학을 접하면서 타인을 구원하려는 집착을 내려놓았다. 사실 그때 이미 큰 도에 손이 닿아 있었고, 아주 좋은 조합이었다. 2020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귀의한 뒤에는 충격도 너무 컸고 전환도 너무 컸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작업 같은 일도 여기에 포함된다. 사실 개인 철학의 균형 잡힌 리듬에서 벗어나 있었다. 당시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가치투자, 장자 사이의 충돌 때문에 고민하기도 했다. 이후 서서히 소화하면서 애초에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자의 본질은 즐거움의 학문이자 연결의 학문이다.
마르크스와 장자의 사상 체계 및 심리학, 가치투자는 남들이 인정하든 말든 나 자신을 입증하려 들 마음도 없다. IT와 AI라는 것도 절대로 자신을 입증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가 면접에서 느끼는 고통은 바로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는 데서 온다.
생계에 얽매일수록 더욱 생계에 얽매인다. 가난한 사람의 악순환이다.
五、돈을 벌지 않아도 괜찮으니, 먼저 놀기 시작하라. 괴롭게 아등바등하지 말라. 신나게 놀아야 한다
장자는 군자는 곤궁 속에서도 지조를 지킨다고 말하며, 곤궁과 영달을 꿰뚫어 보았다. 가난하기 위해 가난해지거나, 가난과 고생을 자랑스럽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다. 장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장애도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장애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 코딩, 수학 공부, 상담, 개인 미디어 운영, 투자,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작업은 모두 괴로운 일이 아니다. 모두 신나게 노는 일이다.
기대하는 순간, 힘을 주는 순간, 자신을 입증하려는 순간, 잘못된 사람과 얽혀 애를 쓰며 무릎 꿇고 판정을 구하는 순간 괴로워진다.
량원펑은 괴로울까?
六、창업과 고생
재능이란 남들은 아주 어렵고 괴롭다고 느끼는데 자신은 즐겁게 누리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책 읽기를 죽도록 힘들어하지만, 나는 책을 2200권 읽었다. 어떤 사람들은 재무제표를 읽으면 졸지만, 버핏은 빠져든다. 초일류 팀이란 초일류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여, 자신들은 즐기지만 남들은 아무리 고생해도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을 하는 팀이다. 괴롭게 아등바등하는 이들은 창업자가 아니라 창업에 성공한 뒤 채용한 996 노동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