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장자 시리즈

노력은 허구의 개념이다, 힘을 주는 순간 빗나가니 자연에 맡겨라

노력은 허구의 개념이다. 힘을 들이면 어긋나니, 자연에 맡겨라

도가 철학에는 왜 ‘노력’이라는 말이 없으며, 소식의 유언은 왜 “힘을 들이면 곧 어긋난다”였을까. 도가 철학의 한 가지 주된 흐름은 바로 ‘노력’이라는 말을 둘러싸고 있다.
一、이미 온 힘을 다했다
1.절대다수의 사람은 이미 온 힘을 다했다
전국의 모든 교실에 있는 학생들, 모든 회사의 칸막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든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 배달원과 청소 노동자들 가운데 자기 인생에서 온 힘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반마다 성적이 하위 10명인 학생들은 모두 ‘노력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운명이 써 놓은 대본이 너무 어려워 온 힘을 다해 버티고 감당하는 것일까.
《개인의 문제는 대부분 인류의 문제이자 사회의 문제다》:
평범한 아프가니스탄 소녀, 미국 빈민가의 흑인, 베트남 노동자가 겪는 상위 100가지 문제, 즉 가난, 불안, 생존, 폭력, 성매매·도박·마약, 굶주림, 열등감, 억압, 절망, 긍정적인 사회적 교류의 부족 등은 모두 사회의 문제이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평범한 유럽이나 미국의 백인이 겪는 상위 100가지 문제, 즉 가족, 사회적 교류, 진로 설계, 업무상의 도전, 심리적 문제, 실존적 위기 등은 모두 인류의 문제이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2.심층 정신/리비도는 이미 최선을 다했으니, 고요히 무위하라
심층 정신/리비도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헤아려 보았으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실재적 자아의 사고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작은 자아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분주하게 망동한다.
학업과 일에서 지금의 상태는 최선을 다했기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무엇을 노력한다는 것인가? 마음의 힘이 소진된 뒤에 다시 자신을 공격할 뿐이다.
어떤 관계든 지금의 상태는 이미 최선을 다했기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계속 ‘노력’해 봐야 소용이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대부분의 사람은 오랫동안 최선을 다하는 동안 마음의 힘과 몸이 이미 소진되었다. 유일하게 노력해야 할 일은 드러누워 조용히 쉬며, 원초아가 고요하고 자연스럽게 치유되도록 하는 것이다.
고요히 무위한다고 해서 능력과 지능과 기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존재다.
앞선 글 《나의 구조: 실재적 자아가 리비도와 함께하기》, 《아주 새로운 작은 자아, 과제 수행자의 작은 자아》
3.현재를 살아가기, 현재를 받아들이기, 현재에 감사하기
지금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엉망이더라도, 온 힘을 다했기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노력’은 흔히 현재에 대한 불만과 거부, 도피를 표현할 뿐이다.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
현재를 살아가기, 현재를 받아들이기, 현재에 감사하기.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고, 현재의 나에게 감사하기》
《평범함을 받아들이기》 《어두운 면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
二、운명의 진실
1.때를 편안히 받아들이고 흐름을 따르며, 자연에 맡겨라
유한성, 고요한 무위, 자연에 맡기기. 노력이 1할이라면 통제할 수 없는 것이 9할이다.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천명을 편안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과, 인생과 화해한다는 뜻이다. ‘노력’이라는 집착도 개념도 없다.
자연에 맡기고, 자연스럽게 일하고 쉬고 즐기고 계획하고 계획을 조정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유유자적하며, 애써 노력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소식: 힘을 들이면 곧 어긋난다.
앞선 글 《장자·자연에 맡기기》
2.역사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주의 철학 역시 인간에게는 자유가 1할이고 자유롭지 못한 것이 9할이라고 말한다.
앞선 글 《운은 통제할 수 없고, 노력은 중요하지 않으며,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즐겁게 살 수는 있다》 《자신의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다. 역사의 침체기를 담담히 받아들이기》
앞선 글: 《도가를 수련하는 방식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련하기》, 《장자를 수련하는 방식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련하기》. 많은 사람이 ‘남을 구하려는 콤플렉스, 보살이 되려는 마음, 혁명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데, 이는 사실 엘리트주의적 시혜론이지 민중사관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누군가가 널리 선양해 줄 필요가 없고, 세계혁명 역시 누군가의 의도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치 당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세계혁명이 일어날 수 없다는 듯이 생각할 일이 아니다.
3.노력할수록 운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을수록 더 노력한다.
핵심은 긍정적 피드백의 순환, 학습된 무기력 대 자기효능감이다.
앞선 글: 《‘노력’이라는 유해한 위로에서 벗어나기, ‘운이 좋을수록 더 노력한다’의 대표적인 사례: 테니스, 프로그래밍》
엘리트들이 운명에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엘리트주의에 빠져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깎아내린다면, 결국 엘리트주의의 역풍을 맞게 된다.
앞선 글: 《운이 좋고 잘나갈 때만 사회진화론자이자 엘리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대형 IT 기업 개발자와 금융업 종사자에게 흔히 보이는 모습》
三、노력하면 곧 잘못된다
1.진정으로 좋은 상태에서는 힘을 쓰지 않는다. 노력하면 곧 잘못된다
사회적 관계에서 편안하고 서로를 보살피며 성장시키는 관계에는 노력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오히려 노력하고 힘을 쓴다는 신호가 나타나면, 이 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 주는 경우가 많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가려 만나는 일이다. 맞지 않는 사람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질 뿐이다. 맞지 않는 사람과 맺은 불행한 결혼은 ‘노력’해서 꾸려 갈수록 더 실패한다.
공부를 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공부가 잘될 때는 노력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몰입하며, 마음챙김 상태에서 크게 고양된다.
몰입에는 힘을 쓰지 않는다. 힘을 쓰면 오히려 몰입에 들어가지 못하고 쓸데없이 분주해진다. 고요히 무위할 때 오히려 몰입에 더 쉽게 들어간다.
2.잘못된 노력
자동차가 주차 브레이크를 당긴 채 타이어에서 연기를 내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는 것과 같다.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된다.
일에서의 성공도 결코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다. 마치 실패한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았다는 듯이 말해서는 안 된다.
앞선 글: 《노력을 멈추기: 모든 사람과 일에 대하여》
3.에너지의 내적 소모
앞선 글 《지옥을 지니고 다니기: 리비도가 내면의 극장에 지옥을 구축하다》: 사람들의 에너지는 줄곧 존재한다. 다만 내적으로 소모될 뿐이다. 리비도는 건강하게 외부에 투여되지 못하고 오히려 안으로 퇴행하며, 공격이 자신을 향해 에너지가 크게 소모된다.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흔히 자기 공격의 일부일 뿐이다.
四、노력에 대한 집착 깨기
1.노력 강박
앞선 글 《소도시 출신 문제풀이 모범생의 병》
《고생에 고생을 거듭해야 남 밑에 사는 사람이 된다: 고난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2.노력 덕분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다
노력 덕분이라고 여기는 것은 하늘의 공을 가로채는 일이다. 자신을 칭찬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깎아내리고(마치 자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으며, 자신은 ‘노력’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듯이), 운명을 깎아내리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일이다. 사회에 만연한 폄하와 억압을 내면화한 것이다.
많은 크고 작은 부르주아들은 운으로 번 돈을 실력과 노력으로 잃는다. 바로 운명과 ‘노력’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앞선 글 《‘노력이 부족하다’는 집착 깨기》
사람은 왜 흔히 타락을 외면하고, 노력을 외면할까?
a.인격에 힘이 없기 때문이다. 자만하며 스스로 감동하거나, 열등감에 빠져 자신을 혐오한다. 침잠하고 나약해져 타락을 외면한다. 어느 단계까지 성장하고 자신감이 생겨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노력과 타락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b.왜 노력을 외면하는가
자신을 지나치게 착취하고, 지나치게 가혹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부신 성취가 없는 한 해는 침체와 실패의 한 해라고 여긴다.
인간의 본성이 게으르다고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인간 본성의 향상하려는 마음을 오해한 것으로, 외부에서 주입하고 길들인 질 낮은 관념이다.
c.미련을 품지 말라.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
4.앞선 글 《교육학, 사회학과 노력》
a.교육학: 분명 거칠게 사람을 선별하는 생산 라인이지, 사람을 기르는 정원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등생은 노력하고, 열등생은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교육학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일반 학생을 가르치는 데 적용한다. 이것이 바로 ‘재생산’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게 된다’는 말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가정이자 민중의 자질이 낮다는 가정이며, 현대 교육의 심각한 폐단이다. 인간 본성은 위를 향하고 선을 지향하며 본래의 온전함을 지닌다는 인본주의를 부정한다.
b.사회학: 가난한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발전의 큰 흐름에 놓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자연히 부지런해진다. 과거의 일본과 독일, 지금의 베트남도 게으르고 자질이 낮다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처럼 쇠퇴의 큰 흐름에 놓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자연히 ‘드러누워 게을러진다’. 1840년 아편전쟁 당시 중국인들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혁명, 세계화와 시장화의 혜택이 의욕을 잃은 가난한 사람들을 노력하는 빈민으로 바꾸었다. 1921년 중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해야 했던 일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혁명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혁명하는 것은 노력인가 아닌가?
五、가장 소중한 것에는 노력이 필요 없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 사랑, 친구, 평온, 행복, 즐거움, 자신감과 자유로움, 자성의 본래의 온전함은 모두 무조건적이다.
우리는 흔히 ‘노력’을 위해 이런 가장 소중한 것들을 소모하고, 가장 희소한 것인 시간과 생명을 소모한다.
六、노력보다 더 중요한 일
1.알아차림
고요한 ‘알아차림’은 사람이 유일하게 ‘노력’해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노력’한다는 느낌이 없을수록 알아차림의 정도가 높아진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울수록 더 잘 알아차린다.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울수록 더 쉽게 잠들고, 잠들려고 ‘노력’할수록 더 잠들지 못하는 것과 같다.
2.평온
《장자·고요함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기》:
수행은 오직 고요함으로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다. 시대가 요동칠 때 고요한 사람 한 명은 거친 바다의 등대이자 고비 사막의 호수다. 그 고요함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살피고, 지탱해 줄 수 있다.
고요함으로 사람을 가려내고, 고요함으로 사람을 얻고, 고요함으로 사람을 이롭게 한다.
시끄러운 세상에서는 고요함이 가장 크게 울린다. 고요한 울림이 뜻을 이룬다. 시끄러운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여 소리가 멀리 퍼지지 못한다. 고요함이야말로 멀리 퍼져 마음의 현을 울린다. 하늘의 소리는 고요하다.
마르크스주의의 고요함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기: 많은 사람이 이해하는 마르크스주의는 요란하고, 청년의 뜨거운 피와 투쟁적 비판으로 가득하며, 극도로 적극적으로 분투하고 불길처럼 세상에 뛰어드는 것이다. 사실 마르크스주의는 고요하고 침착하며, 흐름에 따르고 무위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일이 아니라, 가장 고되고 가장 길고 가장 깊은 혁명이다.
4.성장과 수행은 ‘노력’할 수 있는가
심리상담사가 ‘노력’한다고 해서 한 사람이 변화하는 속도를 높일 수 있을까? 자신이 ‘노력’해서 마음속 업장이 소화되는 속도를 높이고 통제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앞선 글 《수행은 허구의 개념이다》.
5.휴식
원기와 마음의 힘이 회복되도록 한다. 앞선 글: 《일과 휴식의 조화에 관하여》, 《자신이 드러누워 쉬는 것을 허락하지 못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중년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6.선택이 노력보다 중요하다
학업과 일, 독서의 방향, 교류할 상대, 이런 선택들이 이른바 노력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좋은 선택은 사실 에너지가 충만하고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감지하고, 기다려서 맞이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분주하게 움직이거나 ‘탐색’해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가치투자: 입문부터 심화까지의 도서 목록》. 나는 가치투자를 도가 철학에 입문하는 경로로 자주 추천한다.
7.자신의 역사적 역할을 실천하기
한 사람이 역사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역사적 역할을 이해하며, 자신의 역사적 역할을 실천하고, 역사의 흐름을 따르는 것만이 그가 무위하면서도 이루지 못함이 없고 자연에 맡길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앞선 글: 《자신의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다. 역사의 침체기를 담담히 받아들이기》, 《마르크스+장자+심리학: 아래로부터의 마르크스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