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이룬 것이 없는 사람에게도 미래가 있을까’에 답하다—마르크스+장자라는 철학적 해답
이것은 사회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철학에 관한 문제이며,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一、서른 살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면 미래가 없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 자본주의 사회의 마태 효과로 인해 밑바닥에 있는 사람은 처지를 바꾸기 어렵다. 서른 살이 되어서도 자본도 기술도 없이 밑바닥에 갇혀 있다면, 계층 상승의 확률은 분명 낮은 편이다.
- 동아시아 사회의 공리성 때문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사랑에 기초하는 경우가 드물고, 물질과 권력, 의존성에 기초한다. 사람은 사물화되고 도구화된다.
젊은이는 ‘복권’으로 여겨진다. “서른 살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도 미래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사실 삶에서 이런 문제를 겪었기 때문이다. 가족, 여자 친구, 친구, 동창, 친척, 맞선 상대에게 이미 ‘미래가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곧 ‘관계에 미래가 없다’는 뜻이다. ‘자식을 키워 노후를 대비한다’는 목적의식이 강한 사람은 아이를 복권처럼 여긴다. 사서 긁어 보고, 당첨되면 남은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서른 살이 되면 앞서 말한 이유들이 겹치면서 이 복권이 ‘분명히’ 당첨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텍사스 홀덤을 할 때처럼 ‘처음 세 장의 카드’가 너무 나쁘니 뒤에 나올 카드는 볼 마음도 없어진다. 이번 판은 그만두고 패를 던진다. 관계에서도 더는 꾸미지 않고 속내를 드러낸다. 이런 복권 효과는 남자 스물아홉 살, 여자 스물여섯 살 무렵에 흔히 나타난다. 결혼을 재촉하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하는 말, 자리를 잡자마자 가까운 사람부터 내치는 이른바 ‘안착 후 첫 칼질’, 목숨을 걸듯 매달리는 기회주의도 흔히 볼 수 있다.
- 사람의 부와 성취는 그 자체로 이른바 재능이나 노력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운에 달려 있으며, 좋게 말하면 인연과 기회다. 이것이 도가 철학이다. 하지만 실제 교육과 직장은 사람을 길러 내는 제도가 아니라 거친 선별 제도이자 토너먼트 제도다. 끊임없이 ‘운 좋은 사람’을 남겨 마태 효과의 경주로에 올려놓는다. 그래서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충분히 ‘운이 좋지’ 않았던 사람은 그 경주로에서 한참 뒤처지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는 올림피아드 금메달을 따고 칭화대·베이징대·푸단대·상하이교통대 같은 대학에 진학한 뒤, 북미에서 곧바로 박사과정을 밟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의 OpenAI에 들어간다. 성격도 밝고 스스럼없으며 사교적이다. 다른 아이는 낙후된 성에서 입시를 치러 211 프로젝트 대학에 들어갔고, 성격은 ‘내성적이고 예민하며 열등감이 있다’. 스스로 전공을 바꾸고 프런트엔드를 독학해 대기업의 외주 업무를 한다. 분명 후자는 마태 효과의 경주로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 후자에게 재능이 없거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운명이 그런 것이다.
- 개혁·개방 이후 40여 년은 수천 년 역사에서 경제가 가장 빠르게 발전한 40여 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콘드라티예프 파동이 후퇴기에서 불황기로 넘어가고, 성장의 혜택은 줄어들며 계층은 고착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기회도 줄어든다. 대학원 진학의 혜택, 직업 선택의 혜택 등도 모두 줄었다.
- 사회적 시계는 대다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서른 살 이후 주택 대출과 육아에 매인 짐을 짊어지면, 실제로 처지를 바꾸기 어려워진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의 집값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제는 집을 사기만 하면 누릴 수 있던 상승의 혜택도 없다. 정신적으로 쇠락하는 경우도 많다.
- 산업 고도화의 실패, 첨단 산업의 부족, 열악한 관리 문화로 인해 고급 인재와 전문 기술, 양질의 관리에 대한 수요가 부족하다. 단순 반복 업무가 많고, 코드와 PPT를 찍어 내는 일꾼에게는 경험이나 기술, 시야가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다. 오히려 열악한 관리를 견딜 수 있는 것은 젊은이의 몸과 마음뿐이다. 중국 인터넷 업계가 대표적이다. 기술적 난도가 높거나 고급 연구 개발이 필요한 일은 많지 않다. 그저 35세 미만에 985 프로젝트 대학 출신이고, 996 근무를 하며, 인사평가 3.25를 받는 엔지니어를 끊임없이 공급받으면 될 뿐, 경력과 전문성을 쌓은 인재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각종 인문사회계열 전공은 더욱 그렇다.
지난 40년 가까이는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체제였지, ‘한 분야를 깊이 파는’ 체제가 아니었다. 잘나가는 업종도 그 혜택은 10년뿐이고, 그렇지 않은 업종은 더 짧다. 은행, 금융, 토목, 통신 등이 그랬고, 인터넷 업계도 마찬가지다. 기술 스택이 낡아 버리면서 ‘계층 상승’을 둘러싼 나이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진다.
- 회사의 노예는 멸시받는다
불로소득 계층과 그들에게 의존하는 계층은 노동자를 멸시한다. 귀족이 노동할 필요가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손톱을 길렀던 것과 같다. 회사의 노예들은 사회를 지탱하는 주력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멸시를 받는다. 그런데도 그중 많은 사람은 이런 멸시에 동조하고, 심지어 사회진화론까지 받아들인다.
二、서른 살은 인생이 이제 막 시작되는 때다
- 삶의 철학에 관한 문제다
사람의 성장 과정에 따르면, 시험공부에 매달려 온 사람은 스물다섯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물여덟에 업계 경력 3년을 채우며, 서른에 겨우 입문하고, 서른다섯에 막 성숙해지며, 마흔에 한창 일할 힘이 넘친다. 일찍 사회에 나온 사람은 열여덟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스물다섯에 막 세상 물정을 깨치고, 서른에 능숙하게 대응하며, 서른다섯에는 겉으로 유연하면서도 속으로 원칙을 지키고, 마흔에는 여유롭게 일을 처리한다. 서른 살은 인생이 이제 막 시작되는 때인데 사회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회의 문제다.
서른 살에도 미래가 있는지는 삶의 철학에 관한 문제다. 어떤 사람은 서른에 이미 죽었고, 어떤 사람은 서른에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 밖에서 구하기를 멈추고 안에서 구하며,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를 근심하지 않는다.
이미 ‘미래가 없다’는 취급을 받는 사람에게 서른 살에도 미래가 있는가라는 물음의 핵심 과제는 ‘안에서 구하고, 더는 밖에서 구하지 않는 것’이다. 더는 외적 가치관, 즉 명예·이익·권세, 술·색욕·재물·의기, 사회적 평가, 사회적 시계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내면의 탐구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곧 수행의 길이다.
서른 살은 흔히 수행의 길이 이제 막 시작되는 때다. 마음이 죽어 도도 사라지는가 VS 마음이 죽어 도가 생겨나는가 VS 마음이 죽어 마가 생겨나는가. 이는 갈림길의 문제다. 도를 지니고 도를 닦는 사람에게야 앞으로 걸어갈 길이 있다.
수행과 심리적 치유의 관점에서 사람은 한 알의 씨앗이며, 본래의 온전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소외된 봉건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씨앗은 충분한 양분을 얻지 못했다. 자신이 자라난 가정, 처음 몸담은 직장, 자신을 길러 낸 문화 속에는 너무 많은 혼란과 상처가 있다. 자기는 쇠약해지고, 질병과 고통의 상처를 입으며, 작은 자아와 마음속 마에 시달린다. 그래도 그에게는 여전히 본래의 온전함이 있다. 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하는 날을 기다린다. 단호히 떠나고, 굳세게 나아가며, 흔들림 없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 자신을 끌어당기고, 침식하고, 헐뜯고, 가로막고, 잘못 이끄는 모든 사람과 힘에 맞서 저항하고 벗어나기 시작한다.
선종 수행의 목표는 반야의 공성과 보리의 지혜이며, 장자 수행의 목표는 근심 걱정 없이 평온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다. 사람의 즐거움은 외부와 무관하다. 현재를 살아가기에서 얻는 마음챙김과 평온, 행복은 ‘미래’와 무관하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를 근심하지 않는다.
일을 이루는 것은 집착이 아니며, 집착으로는 일을 이룰 수 없다. 바른길을 걷고, 자연의 흐름에 따르며, 좋은 일이 일어나고 좋은 사람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 마르크스+장자, 이것이 철학의 답이다
사회철학, 정치경제학, 역사적 유물론을 이해하고, 삶의 철학, 즐거움의 철학, 죽음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三、일에서 뜻을 이룰 기회는 정말 없는가
한 분야를 깊이 파고, 내공을 쌓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며, 바른길을 걷고, 올바른 일을 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라.
- 각계각층의 상황
소시민적 자기계발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것은 빈말이 아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사람’, ‘문외한’, ‘맨손으로 시작한 사람’이 오랫동안 꾸준히 버티고 내공을 쌓아 성과를 거둔 사례가 너무나 많다.
영화·방송계에는 궈판, 자오쯔, 장쑹원 등 수많은 감독과 배우가 있다. 음악계는 말할 것도 없다. 오랫동안 내공을 쌓아 온 다오랑이 중국 전역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가. 전문대생도 꾸준히 랩을 해서 랩 열풍의 혜택을 누렸다. IT 분야의 독립 창업자에게도 긍정적인 사례가 많다. 개인 미디어에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크고 작은 인플루언서가 많다. 동북 지역의 아이샤오후이이스, 베이징의 카이신마화처럼 평범한 배우들이 오랫동안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성과를 누린 사례도 있다. 장즈레이는 서른한 살이 되어서야 프로 복싱에 입문했다. 장구이메이 교장은 수십 년을 꾸준히 이어 가며 얼마나 큰일을 이루었는가. 나이는 사람의 성장과 성공을 제한한 적이 없다.
사례가 이토록 많은데도 사람들이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이유는 여전히 심리와 수행의 문제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운도 필요하지만, 결국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몫을 해내야 한다.
-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이어 가며 시대의 주기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마르크스는 서른한 살이던 1849년, 혁명의 실패로 몇 번째인지 모를 망명을 했고 수배를 받았다. 유럽의 반동적 탄압 아래에서는 원고를 써서 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웠다. 어머니는 그가 벼슬을 얻거나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줄곧 못마땅하게 여겨 유산을 나눠 주지 않았고, 생활은 극도로 어려웠다. 그에게 미래가 있었을까. 더구나 사후에 돌아보면 1850년대는 경제가 상승하던 시기였고, 혁명과 노동운동은 침체기에 있었다. ‘혁명’의 고조기는 1870년대에 이르러 사회민주당이 통합되고 나서야 찾아왔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를 ‘잊을 수 없는 10년’이라고 불렀다. 이 10년의 어려움에 관해서는 전에 쓴 글이 있다. 「1863년,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다툼」
https://zhuanlan.zhihu.com/p/670977979
하지만 마르크스가 이룬 위업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00년, 레닌은 서른 살이었고 막 3년간의 시베리아 유배를 마쳤다. 유럽으로 건너가 플레하노프와 함께 『이스크라』를 창간했으며, ‘레닌’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다. 이때는 1917년 혁명까지 아직 17년이 남아 있었다.
펑더화이 사령관이 서른 살이던 1928년은 백색테러가 가장 심했던 시기였다. 그는 연대장으로서 경력의 절정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핑장 봉기를 선택하고 징강산으로 올라갔다. 함께 봉기한 동지들은 이후 몇 년 동안 잇따라 희생되었다. 소시민적 기회주의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장기주의는 농담이 아니다. 끊임없이 혁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