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연결 시리즈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느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미래의 나와 연결된다. 그의 뒤로는 광활하고 끝없는 별하늘이 펼쳐져 있다.
누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눈으로 지금의 이 작은 세계와 처지를 바라보며, 지금의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오직 미래의 나뿐이다.
끝내 밝혀지지 않을 억울함은 없고, 기울인 노력은 헛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지켜본다.
모든 분함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저항은 끝내 가을바람 속에서 풀려나고, 모든 혼란은 끝내 겨울바람처럼 풀리며, 모든 곤궁은 끝내 봄바람 속에서 길이 트이고, 모든 고통은 끝내 여름바람 속에서 고요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자성은 언제나 맑고 고요하며, 언제나 원만하다.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늘지도 줄지도 않으며,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본래의 내가 다정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작은 자아는 눈과 얼음처럼 녹아내린다.
이 작은 세계와 지금의 나는 한 번도 고립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과거의 나, 미래의 나와 언제나 이어져 수많은 현재를 가로지른다. 자성은 무한 속을 자유롭게 노닌다. 마음은 세상 속을 노닌다.
능력, 일, 명성과 이익은 그저 겉모습이자 삶에서 마주치는 인연과 상황일 뿐이다. 나는 운명의 궤적 위를 자유롭게 노닌다. 텅 빈 방에 빛이 생기듯, 운명을 밝히고 나를 길러 주는 것은 언제나 자성의 빛이다.
“이 작은 세계”는 그저 지금의 내 주의력이 지닌 한계일 뿐이다. 곤궁은 흔히 마음에서, 주의력의 터널과 파국적인 서사에서 비롯된다. 작은 자아는 비좁은 공간과 시공간 속에서 스스로 고치를 지어 자신을 옭아매고, 이 작은 세계 안에서 공포에 떤다. 새로운 작은 자아의 탄생, 작은 세계의 죄수, 우물 안 개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