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연결 시리즈

운동하며 깨달은 것: 얼마나 해야 하는가보다 얼마나 하고 싶은가

운동하며 느낀 점: 얼마나 운동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운동하고 싶으냐

一、운동해야 하는 게 아니라, 운동하고 싶은 것
너는 뚱뚱하고, 몸 상태도 안 좋고, 오래 앉아 있으니 운동해야 해. -> 그런데 너는 게으르고, 미루는 버릇이 있고, 끈기도 실행력도 없어. ->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이렇게 자기 안에서 소모전을 벌이는 악순환은 사람들의 마음의 힘과 행동력을 더욱 떨어뜨린다. (앞선 글 「미루는 버릇은 허구의 개념이다」)
사람에게는 본래의 온전함이 있다. 몸은 본래 움직이고 싶어 하며, 마음은 본래 진선미와 밝음을 원한다.
몸은 운동을 사랑하고 갈망한다.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신없이 달리고, 쫓고 쫓기며 장난치고, 소리 지르고,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공을 차는 것.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사람은 가끔 기지개를 켜거나 스트레칭을 하다가 편안함에 절로 소리를 낸다. 몸에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
내가 운동하고 싶지 않다면, 풀이 죽어 밖에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듯 해야 한다.
우리는 그 아이를 따뜻하게 살피며, 무슨 일인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아봐야 한다.
몸이 운동하고 싶어 하지 않을 때 물어보면, 몸은 말해 줄 것이다. 너무 지쳤다고, 쉬고 싶다고, 천천히 거닐고 싶다고.
이것은 심리와 마음을 다루는 분야에서 몸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자기 몸을 느끼고, 연결되고, 믿고, 아끼는 것이다.

二、‘해야 한다’의 폭정
심리학자 호나이의 ‘당위의 폭정’은 ‘가혹한 초자아’와 소도시 문제풀이 모범생의 괴로움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소도시 문제풀이 모범생들은 흔히 아주 가혹한 초자아와 감시자를 내면화하며,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게으르다’고 여기며, ‘가혹한 초자아’가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매달고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듯 자신을 몰아붙이고, 달리는 말에 채찍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하고 싶지 않은 자신을 ‘게으름이 골수에 박힌 사람’으로 여기며, ‘자신을 한 번 몰아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체계다. 장쉐펑의 비극에서도 볼 수 있듯, 위험한 체계다.
앞선 글 「좋은 할머니처럼 자신을 돌보기」, 「연결은 어떻게 끊어지는가: 본래의 온전함을 지닌 아이에서 외롭고 막막한 어른으로」
「소도시 문제풀이 모범생」:
많은 사람이 “운동은 곧 달리기와 끈기다(어릴 때부터 이런 인식이 형성됐다) - 달리고 싶지 않다 - 억지로 달린다 - 더는 달릴 수 없다 - 자신을 깎아내린다”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가끔은 컨디션이 좋고 기분도 좋아서 “역시 달리기는 좋네. 역시 나를 몰아붙이면 효과가 있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하프마라톤을 여러 번 뛴 것도, 오랫동안 이런 상태에 있었고 자신을 몰아붙여 왔다는 확실한 증거다.
“운동=달리기=끈기”라는, 머릿속에 낙인처럼 박힌 생각은 금융권과 하이뎬 지역의 교육열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 달린 거리와 하프마라톤, 철인 3종 경기 기록을 서로 비교하는 분위기 속에서 더욱 굳어졌다. “달리기를 해야 해. 하프마라톤을 뛰고, 위챗 모멘트에도 올려야 해”라는 생각이 나를 움직이는 집념이었다.
그 뒤 10년 동안 나는 그 시절의 일기를 수없이 펼쳐 봤다. 감당하기 힘든 도전, 불안, 결핍, 좌절, 트라우마, 스트레스 등으로 나 자신을 너무 많이 소진시켰다. 과로로 인한 체중 증가, 갑상선 기능 저하증, 인슐린 저항성, 인두염, 위염, 불안장애 의심 증상 등도 있었다. 그런데도 가혹한 초자아는 의기소침하고 지친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나는 정말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좋아하는 운동은 있다. 어릴 때부터 숨바꼭질, 쫓고 쫓기며 장난치기, 모래주머니 던지기 놀이, 축구, 물놀이와 수영, 배드민턴, 스케이트, 스키를 좋아했다. 그런데 왜 이런 것들을 계속 즐기지 못했을까? 대개는 함께할 사람을 구해야 했고, 그러면 “함께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나는 잘 풀리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는 생각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도 피하게 됐다.

三、보통 사람은 ‘의지력을 소모하는’ 운동을 고를 필요가 없다. 재미있는 것을 고르면 된다
의지력과 마음의 힘은 결과다. 자신을 가꾸고 돌보며 얻는 결과다. 단련과 노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앞선 글 「노력은 허구의 개념이다」: 노력은 결과이며, 긍정적인 피드백이 핵심이다. 운이 좋을수록 더 노력하게 된다. 노력보다 선택이 더 중요하다.

四、얼마나 운동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운동하고 싶으냐
지금 테니스나 농구를 할 수도 없고, 산책할 여건도 안 되는 상황에서 오래 앉아 있고 혈당도 관리해야 하니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도, 여전히 자신을 강요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몇 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몇 개를 할 수 있을까? 내 몸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어디가 불편할까? 어디에 힘이 없을까? 몸은 어떤 운동을 하고 싶어 할까? 몸에는 어떤 운동이 필요할까?
작은 자아와 가혹한 초자아가 주도하던 데서, 몸이 주도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한다는 말은 허구의 개념이다. 편안한 영역에서 또 다른 편안한 영역으로 가야 한다.
턱걸이를 하면 내 등 근육은 아주 시원하고 만족스러워하며, 스쿼트를 하면 엉덩이와 다리가 아주 시원해한다. 심장이 쿵쿵 뛰고 숨이 차오를 때도 몸은 아주 상쾌해한다. 근육과 몸에는 나름의 편안한 영역이 있다. 헬스장의 장점은 적절한 무게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이 아주 편안해서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를 더는 할 수 없으면 뒤로 발을 내딛는 리버스 런지로 바꾼다. 팔굽혀펴기를 하기가 귀찮고 바닥의 먼지가 묻는 것도 싫으면 인클라인 푸시업을 고른다. 턱걸이로 몸을 끌어 올릴 수 없으면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는 오스트레일리안 풀업을 한다.
나를 몰아붙이지도, 탓하지도 않는다. 몸의 말만 듣고, 몸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살핀다. 그러다 몸이 서서히 깨어나 갑자기 잠깐 달리고 싶다고 말하면, 나는 신이 나서 수십 미터, 수백 미터를 달린다. 가슴 가득 봄바람을 안고서. 어린 시절에는 여렸으니, 끝내 장년의 유람만은 못했구나.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일과 삶에서도 몸과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듣는다. 앞선 글 「‘나’의 구조: ‘실재하는 나’가 리비도와 함께하기」

五、심리학과 철학은 왜 중요한가?
인간의 본성은 악한가/선한가, 게으른가/부지런한가, 애써 분투해야 하는가/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야 하는가. 이런 기본적인 이해의 바탕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장자』 「양생주」: 자연의 이치에 의지하고, 본래 그러한 바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