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연결 시리즈

인간관계 가려 맺기 2: 친구는 지금 이 순간에 있다

교제 상대 가려내기 2: 지금의 나와 벗이 되어주는 사람, “인정을 구하지” 말고 “당신이 자신을 증명하고 진화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을 멀리하라

  1. “당신이 자신을 증명하고 진화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을 멀리하라
    “당신이 자신을 증명하고 진화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을 멀리하라. 이 생각은 《현재를 살아가기》에도 썼는데, 거기서는 “지금의 나와 벗이 되어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친구가 아니다. 예전에는 내가 “분에 넘치게 사귀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발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자주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감동하곤 했다. 나를 싫어하지도 않고, 내게 맞춰주고, 조언까지 해준다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만 더 나아지면, 몇 년만 더 지나면 그들을 만족시키고 완전히 조화로운 세계에 이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른이 넘고 나서야 그들이 내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귀에 거슬리는 말도 충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고” “인정한” 것 역시 대부분 실질적인 모습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후광 때문이었다.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당신을 부정하는 것은 흔히 자기 부정을 외부에 투사한 것이거나, 그저 자기애에 빠진 사람의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일 뿐이다. 많은 사람에게는 애초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지하며 북돋아줄 능력이 없다. 지금의 당신을 좋게 봐주지 못한다면 명백히 건강하지 않은 관계이니, 그런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마라. 연애라면 더더욱 그렇다.
    절대로 자신을 증명하려 들지 마라. 자신을 증명하려 드는 것은 해롭고, 헛되며,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
  2. 이유: 15~25세의 “경쟁, 면접, 경쟁 선발, 과잉 경쟁” 사고에서 개인 브랜드를 바탕으로 한 “나답게 살기+서로의 성취를 돕는 협력” 사고로 전환하기
    (1) 경쟁 선발과 과잉 경쟁
    15~25세에는 연애에서 벌어지는 남성 간 경쟁과 여성 간 경쟁, 커뮤니티와 사교 관계에서 받는 여론의 압박, 대학원 입학 면접과 공공부문 정규직 선발 면접, 취업 면접, 직장에서 윗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겪는 “면접받기와 평가받기”가 있다.
    이처럼 빽빽하게 이어지는 상황들은 사람의 불안과 열등감·자만심을 자극하고, “노력”, “자기 증명”, “자신을 사물화하고 도구화하며 규율에 끼워 맞추기”를 부추긴다. 과잉 경쟁 사회에 만연한 NPD와 PUA는 이를 더욱 심화한다.
    대체로 서른이 지나면 서서히 달라진다. 내면의 중심이 성숙해지고, 밖에서 구하는 것은 줄어들며,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부분은 늘어나고, 타인의 인정을 좇는 것은 줄어든다. 조금 더 여유로워진다.
    (2) 나답게 살며, 존중과 공감을 차분히 기다리기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면 나답게 살며 개인 브랜드와 자본을 쌓아야 한다. 경쟁 선발, 악성 경쟁, 남성 간 경쟁, 과잉 경쟁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아실현과 서로의 성취를 돕는 협력의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니 “인정을 구하지” 말고 존중과 공감을 차분히 기다리라는 것이다. 인정이란 본질적으로 여전히 낮은 위치에서 평가받고, 자신을 사물화하고 낮추며 도구화하는 것이다. 밖에서 구할 뿐 아니라 외부에 영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8번 마사지사가 사장과 팁을 좇는 것과 같다. 친구든 고객이든 협력자든 동업자든, “존중과 공감”을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당신을 “존중하지도, 당신에게 공감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영원히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흔히 그들은 그 “인정”을 미끼로 당신에게 PUA를 가하며 애태우게 한다. 혹은 “고의”가 아니더라도 이미 사실상 PUA이자 착취인 경우가 많다.
    (3)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나답게 사는 것
    《본래의 온전함》에서 이 부분을 썼다.
    인간은 무언가를 더해가며 진화하는 존재가 아니며, 더 강하고 더 좋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작은 자아가 꿈과 환영, 물거품과 그림자처럼 변하는 것을 멈추고, 본래의 나에게 있는 영원한 원만함과 고요함으로 돌아가라.
    “더 나은 내가 되기”는 해로운 개념이다. 더 잘 나답게 살아야 한다. 도를 닦으면 날마다 덜어내어, 갓난아이로 돌아가고 본래의 나로 돌아간다. 이른바 무언가를 더하고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먹구름이 걷히고 아무것도 없는 하늘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먹구름에서 하늘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하늘은 본래의 나이지, 더 나은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와 벗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어, 나는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지금의 나와 벗이 되어주지 않는 사람들, 내 기운을 꺾는 사람들은 내가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하고, 업장에 얽매이게 하며, 나 자신과의 연결을 끊어놓는다.
지금의 나와 벗이 되어주는 사람들, 내 기운을 북돋우는 사람들은 내가 지금 이 순간에 편안히 머물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이고, 현재를 살아가며, 지금 이 순간이 원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