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문제는 대부분 인류의 문제다—지나친 자책과 자기 공격을 멈추고 어두운 면을 끌어안기
一、개인의 과제는 흔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 인류의 문제다
개인의 과제는 흔히 개인의 문제(책임)가 아니다.
평범한 아프가니스탄 소녀, 미국 빈민가의 흑인, 베트남 노동자가 겪는 상위 100가지 문제, 빈곤, 불안, 생존, 폭력, 성매매·도박·마약, 굶주림, 열등감, 억압, 절망, 긍정적인 사회적 교류의 부족 등은 모두 사회의 문제이지, 그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평범한 유럽이나 미국의 백인이 겪는 상위 100가지 문제, 가족, 사회적 교류, 진로 계획, 업무상의 어려움, 심리적 문제, 실존적 위기 등은 모두 인류의 문제이지, 그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 아이가 제대로 쉬지 못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며, 아무리 해도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교사는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거나 최선을 다해도 도와줄 수 없고, 부모는 때리고 꾸짖거나 “최선을 다해도” 바꾸지 못한다. 아이는 몰래 게임을 하고, 어린 나이에 삶의 방향을 잃고 절망한다. 이것은 가장 전형적인 “개인” 문제지만, 분명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이 장애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인류의 과제이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二、인류의 문제는 세 가지로 나뉜다.
a. 이미 전반적으로 해결된 문제(예를 들어 불, 언어). b. 이미 부분적으로 해결된 문제(예를 들어 기근, 수돗물, 전기). c.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사유제, 봉건주의, 자본주의, 관료주의, 소외, 인도적 위기, 실존적 위기, 과학기술의 진화).
두 번째 범주가 바로 인류의 상공업이 처한 현주소다. 생산능력이 과잉인 부문이 지구에서 결핍을 겪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판매한다. 식량 수출, 공산품 수출, 전력 수출, 기술 수출 등이 그 예다. 이 범주는 사유제와 자본주의에 가로막혀 있다. 사실 인류는 이미 전반적인 해결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해결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식량은 이미 전 세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기에 충분하지만, 세계 인구의 절반은 여전히 굶주림의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이 굶주리는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산업예비군이자,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게 매장된 광산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회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려, 그 개인들을 심리적으로 조종하고 학대한다.
많은 문제는 흔히 “완전히 해결된 상태”로 바뀌며, 두 번째 범주에서 첫 번째 범주로 옮겨 간다. 낡은 산업이 시대에 뒤처지게 되는 것은 흔히 인류가 마련한 해결책의 질적 향상을 뜻한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고, 화학섬유가 면직물을 대체하고, 수돗물이 물지게꾼을 대체한 것, 신중국에서 많은 감염병이 사라진 것이 그 예다.
三、사회 문제의 개인화
“자기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좀 찾아봐.”
사회 문제의 개인화는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고문이다. 인간의 “자책-열등감-자만” 기제와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용해 사람을 우롱한다. 사람이 “쉽게 자신을 공격한다”는 점을 이용해 자기 자신을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어떤 동물이 쉽게 “거세당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그 동물을 거세하는 것과 같다. “유독한 수치심”은 아주 흔한 만악의 근원이다. 사회를 탓해 봐야 소용없다고 해서 자신을 탓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에게 초인이 되라고 요구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해지라고 “요구”한다. 그러지 못하면 “노예처럼 부림당하고 억압받는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이것이 진짜 목적이다). 누구나 벼락부자가 되고 강해져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꿈꾸는 것은 사회가 마성에 물든 모습이다. 즉, 모두가 동료보다 빨리 달리거나 동료의 발을 걸어 넘어뜨림으로써 사자에게 잡아먹힐 운명을 피하려 애쓰는 것, 자본주의적 과잉 경쟁의 배틀로얄이다(엥겔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이 자신의 “자유”에 따라 본래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도 “잘못된 선택”을 했으므로 “이러저러한”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철학적 탐구가 아니라, 흔히 심리적 조종과 학대, 그릇된 관리의 재판, 자백 강요다. 나에게는 자유가 있었고, 올바른 선택지가 있었고, 아름다운 운명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몰랐고, 놓쳐 버렸으며,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다. 이것은 이치를 설명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괴롭히고 저주하는 것인가?
한편 인류의 난제와 개인의 과제 앞에서,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프롤레타리아 개개인은 흔히 인간성의 빛을 보여 준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에 빚진 적이 없고, 사회와 인류에 미안해할 일을 하지 않았다.
四、사람은 자신의 “문제”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자유와 책임”은 실존주의의 네 가지 요소 중 하나, 즉 인간의 영혼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다. 책임은 사람이 어떤 면에서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다. 이것은 철학의 핵심 문제이므로 간단히 답하기 어렵다.
내가 배운 범위에서 보면, 첫 단계의 자유는 “비-부자유”, “자유롭지 않음이 아님”이다. 즉, 자유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부자유”는 상대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자유에는 두 차원이 있다. 사상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그리고 책임)다. 사람에게는 “부자유”를 알아차리고 거기서 벗어날 자유가 있다. 사상에서 “비-부자유”의 가장 중요한 점은 알아차림이며, 온갖 “부자유”, 규율화, 소외, 집착을 걷어 내고 깨뜨리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장자는 모두 이 일을 했다. 행동의 자유(책임)는,
행동의 차원에서 “책임”은 “인과”와 관련된다. 인과에는 자기 자신 이외의 외부 요인들이 개입한다. “선의로 한 일이 나쁜 결과를 낳는다”, “행적이 아니라 마음을 본다”, “마음이 아니라 행적을 본다”는 말들이 있으니, 그 자유는 더욱 정의하기 어렵다. 행동 차원의 “비-부자유”란 간단히 말해 잘못된 일을 하지 않고,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곧 자신을 해치지 않고, 사리를 분별하여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즉, 사람은 “결과”나 인생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고, 다만 “순응”할 수 있을 뿐이다. 행동의 자유는 “부자유”에 빠지지 않는 데 있다. 함부로 자신이 잘못했다고 여기며 자신을 공격하지도 않고, 함부로 자신을 내세우며 자만하지도 않는다. 외물 때문에 기뻐하지 않고, 자신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다. 올바른 일을 한 것은 인간의 본래의 온전함에서 나온 것이므로 기뻐할 것까지는 없다. 잘못된 일을 한 것은 그 사람의 불행이다.
범죄자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법학, 사회학,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마르크스와 엥겔스, 장자도 논의한 바 있다. 나는 더 논의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선 나는 평범한 사람이지 범죄자가 아니다. 그런데 사유제 아래에서는 프롤레타리아와 평범한 사람은 심판받아야 하고, “성공한 사람”은 심판받지 않는다.
五、자책은 흔히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자아의 “자만-자기혐오”다
져서는 안 될 책임은 지면 안 된다. 그러면 스스로 번뇌를 불러들이고 평생을 그르치게 된다. 져야 할 책임이라면, 스스로를 그르친 결과와 인과를 누구도 피할 수 없으니 이미 “책임을 지고” 있다. 이 둘을 합치면 “과도하게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은 “자책”이 아니라 “자만”이다. 전능하다는 자만, 아기처럼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며 주변의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만” →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짊어짐”, “온 세상에 죄가 있다면 그 죄는 짐에게 있다.” 그다음은 자기 공격, 자기 부정, 자기혐오, 자기 파괴다. “자만-열등감-자기혐오”, 이것이 호나이 심리학의 “삼위일체”다.
六、문제, 어두운 면, 약점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평범한 사람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고 속죄할 수도 없는 죄가 얼마나 있겠는가.
과실치사나 고의로 남을 다치게 하는 중죄조차 무기징역이 아닌 유기징역을 받는다. 그런데 잘못된 결정으로 수천만 명을 죽게 한 사람들은 흔히 장수한다.
한 사람이 회피하고 억누르고 자책하는 문제와 어두운 면은 흔히 문제가 아니라 삶의 여정이다.
한 사람의 어두운 면과 약점, 좀처럼 다스릴 수 없는 마음속 마귀와 허점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감당하는 인류와 역사의 곤경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최상급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비로소 함께 마주할 수 있는 곤경이다. 해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인류 문명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개인에게 어두운 면이 “있고”, 그 “어두운 면”을 두려워하는 것은 먼 옛날 사람들이 일식과 월식을 두려워하고 겨울을 두려워했던 것과 같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일식과 월식뿐 아니라 겨울에 대한 두려움도 “기본적으로 전반에 걸쳐 해결”했다.
좋지 않은 상태에 빠졌다고 수치스러워하지 않기
좋지 않은 상태에 빠진 것은 자신의 과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수치스러워하거나 자책하거나 자신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휴대폰만 들여다보기, 자위, 미루기, 각종 강박 행동, 폭식 등이 있다.
아프리카의 한 아이가 비위생적이고 비문명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이것은 그 아이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그 아이가 곤경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긍정적 의미
심리학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른바 어두운 면 속에는 흔히 자신의 본성, 자유와 책임, 타인과 사회의 진실을 알아차릴 단서가 있다. 그것은 보물 창고다.
당신의 약점과 부족함은 바로 한 인간으로서 드러나는 진실한 모습이다. 뛰어난 사람들이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꼭 맞게 보완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바탕이다. 톱니바퀴의 홈과 같아서 결함이 아니라,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만들어 내는 무궁한 동력의 원천이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이 평범하다는 이유로 절망하고, 스스로에게 “초인”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七、어떻게 할 것인가
수백 년 동안 수십 세대의 사람들은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모두 크게 발전한 인터내셔널의 세상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작은 나 자신과 완전한 본래의 온전함으로 역사와 사회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과제를 직시하고 지혜와 용기를 키우되, 자신의 몫이 아닌 과제와 책임을 떠맡지는 말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과제다.
마르크스와 장자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철학이다.
덧붙임:
이 글을 쓸 때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 쓰고 나니 그 유명한 몇 구절이 떠올라 가사를 찾아보았고, 과연 가사 전체가 바로 이런 뜻이었다. 일을 망치는 것, 책임, 심판,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록 음악은 흔히 “실존주의”와 관련이 있다. 존재, 무의미, 자유와 책임, 고독,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