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방황하는 흔한 경우 중 하나—실존적 위기
매년 대학생은 천만 명을 넘으며, 이 글은 그중 한 유형의 상황만을 다룬다.
一、사람이 향하는 기본적인 방향 중 하나는 누가 내 고통을 알아보고, 설명하고, 덜어 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고의 차원에서는 탐구하고, 책을 읽고, 앱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나타난다. 심리의 차원에서는 각종 (병리적인) 관계 양식과 심리 양식으로 나타난다. (앞선 글: 《세상 사람은 모두 괴롭다: ‘깊은 붕괴, 깊은 고통’을 이야기하며, ‘운명은 왜 유독 나에게 이렇게 가혹한가’라는 누리꾼의 질문에 답하다》)
자기심리학의 용어로 말하면 자기대상의 세 가지 주요 기능이다. (a. 거울반영: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 것, b. 이상화: 평온하고 강하며 완전한 힘과 연결되는 것, c. 쌍둥이/분신: 타인과의 기본적인 유사성, 비슷한 존재라는 느낌, 연결감. 앞선 글 《동아시아의 심리적 성장: 심리적 경계와 자기대상관계 이론, 대상관계 이론》.)
마르크스+장자+심리학이면 인간의 고통을 충분히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대학생에게는 치명적인 업장이 하나 있다. 바로 소시민적 엘리트주의다. 이들은 뼛속 깊이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고방식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앞으로도 평범한 노동자로 살지는 않을 거야. 나는 계급을 초월한 존재라고. 열등감도 없어. 오히려 자만심이 있지.) 또한 내면의 중심이 약하고 존재감의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감을 지탱하는 방어기제로서 특별함과 우월감이 더욱 필요하다.
마르크스, 장자, 심리학은 모두 인간이 유한하며 평범한 사람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대체로 서른 살이 넘고 사회에서 호되게 시달린 뒤, 자신이 평범한 사람임을 알게 되고 내면의 중심도 어느 정도 성숙하고 튼튼해지면 장자와 심리학을 배우기가 더 쉬워진다.
二、대학생이 흔히 마주하는 과제는 다음과 같다
- 불안: 경제, 원가족, 사회적 소속감, 정신적 소속감 등.
- 실존적 위기(어빈 얄롬을 추천한다), 정체성, 막막함, 외로움, 무의미, 자유와 책임, 죽음, 내면의 공허함.
- 취약한 자기, 주체성의 부족, 깊은 관계와 실천의 부족, 진선미 및 소박한 프롤레타리아와의 연결 부족.
- 심리적 외상, 정서적 관계의 문제. 정신분석의 가장 기본적인 열등감-자만-자기애-자기혐오라는 과제(호나이).
마르크스, 장자, 심리학의 관점에서 해결 방법은 다음과 같다(앞선 글 《마르크스와 장자: 평범한 사람과 탕핑하는 사람의 철학》). 마음을 치유하고, 소시민적 괴로움(사회진화론, 엘리트주의, 소비주의, 소외, 기회주의 등)을 치료한다. 자신을 이해하는 다섯 가지 요소(학업, 직업적 활동, 사교, 몸, 마음)를 탐구하고, 깊은 관계를 발전시키며(우즈훙의 《깊은 관계》를 추천한다), 주체성을 기른다. 새로운 대상관계 경험(위니컷, 쩡치펑)과 자기대상관계 경험(코헛)을 탐구한다. 세상의 소박한 진선미 및 법칙과 연결된다. 노동하는 사람들, 대자연, 역사적 유물론과 연결되고, 자기-타인-세계가 조화롭게 함께 존재함을 느끼며, 이드의 평온함과 천인합일을 느끼고, 본래의 온전함을 되찾으며, 밖에서 구하는 일을 멈춘다.
(앞선 글 《동아시아의 심리적 성장: 심리적 경계와 자기대상관계 이론, 대상관계 이론》, 앞선 글 《핀둬둬 댓글란의 문학과 재래시장의 치유》.)
막막함이 그리 심하지 않은 일부 학생에게는 현실적인 발판이 있어, 돌다리를 더듬으며 강을 건너듯 나아갈 수 있다. 1. 서민 생활권이나 작은 장사를 하는 가정의 자녀들은 노동자와 소상공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대학 시절부터 아르바이트와 돈벌이에 바쁘며,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업계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한다. 2. 원가족의 위기를 겪은 자녀들은 이를 계기로 심리학을 배우며 세상과 인생을 돌아본다. 3. 원가족에 사랑과 자원, 뒷받침이 있고, 어릴 때부터 습관과 기초, 인식이 비교적 잘 갖춰진 경우다. 4. 컴퓨터공학과처럼 취업 전망과 학습 경로가 비교적 좋고 명확하며, 흥미도 높고 정체성도 비교적 뚜렷한 경우다. 5. 우월감을 추구하는 경로다. 이공계에서는 수학·물리 경시대회 참가 학생, 인문계에서는 명문대, 상경계에서는 명문대와 명문 단과대학 등이 여기에 해당하지만, 이에 딸리거나 나중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덧붙임: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사상 체계는 순수한 철학이나 이론 학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둔다. 자신의 계급, 처지, 심리적 과제, 전공, 취업 방향 등이야말로 사상 체계의 진정한 뿌리다. 대학 시절에는 역시 교양교육과 전공·직업교육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앞선 글 《노동자를 위한 교양교육 도서 목록》.
三、외부 환경의 소외
교육, 학교, 사회의 소외, 직장과 인턴십에서의 소외, 인간관계의 소외, 이데올로기의 혼란 역시 대학생이 깊고 진실하며 진선미를 담은 반응을 얻기 어려운 원인이다. (마르크스: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
인본주의의 출발점은 모든 사람에게 본래의 온전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을까? 외부 환경(성장 과정의 바탕이 된 환경: 원가족, 처음 받은 교육, 처음 몸담은 직업과 업계)이 충분한 영양분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저스가 말한 조력적 관계, 대상관계 이론에서 위니컷이 말한 안아주는 환경, 자기대상 이론의 자기대상 경험, 인본주의 경영학에서 말하는 마음을 돌보는 경영,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 프롬이 말한 《건전한 사회》와 《사랑의 기술》.)
따라서 사람들에게는 크게 두 가지 발전 방향이 있다. 좌파의 방향은 마르크스주의와 장자 철학을 통해 소외되고 척박한 외부 환경 속에서 소박한 진선미를 가려내어 받아들이고 연결되며, 마음에 영양분을 주고, 본래의 온전함을 지닌 마음이 충분히 발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파의 방향은 그 반대로, 유해한 에너지에 오염되는 것이다.
四、이것이 실존주의가 반드시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실존주의 자료는 소외된 사회에서 소시민이 겪는 삶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카프카의 《변신》이 대표적이다(개인의 소외, 인간관계의 소외). 고통을 묘사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데는 능하지만(카프카, 카뮈, 니체, 도스토옙스키 등의 인기가 그 예다), 설명을 제시하고 해결 방향을 제공하는 데는 능하지 않다. 그래서 그에 따른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은 흔히 침체되어 있고, 인간 본성에는 희망이 없다고 여기며,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생각한다.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배척과 두려움은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더욱 키우며,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이것이 어빈 얄롬이 귀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니체 사상이 극우 나치에게 이용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니체의 ‘초인’ 사상은 지금까지도 마르크스의 ‘전면적으로 발달한 인간’이 아니라 ‘엘리트’로 이해된다. 니체가 비판한 범속한 무리는 소외가 더 깊은 소규모 부르주아와 상층계급이 아니라 ‘대중, 노동자와 농민, 오합지졸’로 이해된다. 노동자의 입장, 좌파의 입장에 섰던 루쉰이야말로 니체를 이해하는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독일의 소규모 부르주아 집단이 겪은 생존의 위기+실존적 위기가 나치 극우의 뿌리다.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참고하라.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나선형 진보와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의 소박한 진선미를 이해하게 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 및 역사의 흐름과 연결되게 한다. 마찬가지로 장자에게도 심오한 사회비판의 내용이 많으며, 사람과 대자연, ‘도’와 연결되는 ‘긍정적인’ 실존주의적 경험이 있다.
五、실존적 위기+취약한 자기의 이후 전개
흔히 잘못된 방향으로 바깥에서 답을 구하게 된다. 흔히 나타나는 상황은 자기대상관계의 ‘자기대상 발달 실패’로 설명하면 더 명확해진다. 세 가지 주요 기능이 발달하지 못하고, 병리적인 자기대상 기능을 찾게 되는 것이다.
- 병리적인 거울반영: 외부의 인정을 갈망한다. 값싸고 병리적인 인정과 칭찬을 구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억지 논쟁을 일삼거나 이목을 끈다.
- 병리적인 이상화: 타인을 이상화하지만(이상적인 남성·여성), 그 이상화는 쉽게 무너진다. 우상을 숭배하고 거대서사를 숭배하며, 그 안에서 힘과 소속감을 찾는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파, 포퓰리즘, 나치로 이어진다.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어 보기를 권한다. 마르크스주의 애호가 집단에서도 이런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앞선 글 《마르크스주의를 배우는 두 가지 태도: 쥘리앵과 나폴레옹의 영웅몽 VS 각성한 평범한 사람》.
- 병리적인 쌍둥이/분신: 쌍둥이 아기 같은 관계와 무제한적인 수용을 추구하며,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기편끼리 뭉쳐 다른 편을 공격한다.
흔히 보이는 한 유형은, 한편으로는 누구도 내 고통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속마음: 제발, 누가 내 고통을 좀 설명해 줘),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비주류 철학에서 몇몇 문장을 찾아 자신의 우월감을 지탱하는 것이다. 봐, 이 사람들 정도는 되어야 겨우 설명할 수 있잖아. 평범한 사람들은 아예 이해하지 못해.
六、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좌우로 계속 갈라진다
대체로 사회에 진출하면 자신의 인식 체계와 현실이 충돌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실제 업무와 연애, 교우관계 속에서 부딪히며(어떤 이들은 좌절을 겪으면 여성을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사회에서 호되게 시달리면서 서서히 현실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좌우로 갈라진다. 물론 우경화는 소규모 부르주아의 주된 흐름 중 하나이며, 인터넷에서도 그 조짐을 볼 수 있다.
좌파의 방향은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며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프롤레타리아가 척박한 산골과 험한 물가에서 나온 사나운 사람들이 아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오히려 소시민과 상층계급이 소외되어 있으며, 자신은 더욱 현실적이고 소박해진다. 마르크스주의로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을 정리하고 재구축한다.
실천->인식->다시 실천. (앞선 글 《개인의 사상 체계를 세우는 일에 관한 짧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