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철학과 후기 그리스 철학의 유사성(에피쿠로스주의, 스토아주의, 견유주의)
- 서로 가까우며 비슷한 점
독일과 미국의 철학자, 심리학자 중에는 도가 철학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융, 프롬, 매슬로, 톨레, 헤세 등 수없이 많다.
장자 철학은 후기 고대 그리스 철학 자체와도 상당히 통하는 점이 있다.
a. 에피쿠로스주의의 행복·즐거움·평온에 관한 철학, 자연철학, 죽음의 철학, 유물론, 변증법, 실존주의, 인본주의(장자와 핵심이 같으며, 같은 시대이기도 하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기원전 270년, 장자는 기원전 369년~약 기원전 286년).
b. 견유주의의 비판 철학과 드러누워 버티는 철학(장자는 드러누워 버티는 철학의 대가이자 비판과 해체의 대가였기에 유가가 몹시 미워했다. 『장자』의 외편과 잡편에서 그의 문하 제자들은 비판의 철학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거협」에서는 성인, 법률, 도덕 등이 “큰 도둑을 위해 지켜 주는 것”이며, 부와 지식은 “큰 도둑을 위해 쌓아 두는 것”이고,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 도둑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등의 철저한 비판을 제기했다. 이 정도의 비판은 이미 마르크스주의의 상부구조 비판, 이데올로기 비판에 근접해 있다.)
c. 스토아주의의 우주 법칙, 개인의 한계에 관한 이론, 덕성, 세속을 초월하는 태도 등(『도덕경』 및 황로학과 상당히 가까우며, 어느 정도는 일종의 군주론이기도 하다. 예컨대 스토아학파의 유명 인사인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서양에서 널리 읽힌다).
- 같은 역사적 시기
이는 후기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에 이르는 시기가 전국시대와 마찬가지로, 문명이 초기 제후 중심의 봉건제에서 관료제적 제국의 봉건제로 나아가던 때였기 때문이다. 인구와 경제,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동시에 예속, 전쟁, 음모, 재난은 더욱 심화되고 기형적으로 변했으며, 원시적인 “국인 민주주의”는 줄어들었다. 그래서 동서양 모두에서 인본주의 철학, 인간에 관한 철학, 삶의 철학, 행복의 철학이 크게 발전하여 재난과 고난이 끊이지 않는 소외된 사회에 맞섰다.
기독교 역시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나기 시작해 중하층의 고난에 뿌리를 내렸으며, 점차 로마 통치 체계의 일부가 되었다. 한나라 초기 동중서의 유가 개혁, 그 밖의 몇몇 계시 종교와 일신교도 대체로 이와 같은 역사적 시기에 등장했다. 마르크스의 옛 동지 바우어(유명한 저서 『신성가족』의 주된 비판 대상)
다음 두 문단은 앞서 쓴 글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06, 청년 헤겔학파와 마르크스·엥겔스」에서 가져왔다.
바우어는 1942년 요한복음의 역사를 계속 비판하면서, 후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 이러한 철학들이 유행하기 시작한 근원은 “고뇌하는 의식”, 즉 로마의 강권 앞에서 자아의식의 자유와 현실의 육체적 부자유 사이에 생기는 모순이라고 썼다. 이러한 철학의 목적은 고난과 패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을 해방하여 모든 외부 사물을 초월하고, 내면에서 답을 구하며, 정신의 평온 속에서 행복을 찾도록 하는 것이었다. 고뇌하는 의식은 기독교를 낳았고, 기독교는 소외된 자아의식의 산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독교는 유대·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필론과 신플라톤학파 같은 그리스·로마의 통속철학, 특히 신스토아학파 철학자 세네카에게서 형성되었다. 바우어는 필론을 기독교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불렀고, 세네카는 기독교의 숙부로 보았다. 엥겔스가 지적했듯이 바우어의 주된 공적은 “기독교가 외부에서, 유대에서 들어와 그리스·로마 세계에 강요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생겨난 가장 고유한 산물임을 기본적으로 입증했다”는 데 있다. 슈트라우스와 마찬가지로 바우어는 기독교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보았지만, 개별 인물의 주관적 창작과 주관적 기만이라는 요인, 즉 “자아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을 중시했다. 엥겔스는 슈트라우스와 바우어의 논쟁이 실은 헤겔 철학의 내적 모순이라고 정리했다. 역사를 결정하는 힘이 실체인가, 자아의식인가, 객관인가, 주관인가 하는 문제였다.
19세기 초, 제1차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초기의 시기에 괴테, 칸트, 헤겔에서 청년 헤겔학파와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마주한 것도 사실상 같은 유형의 역사적 전환 주기였다. 자본주의가 봉건주의를 대체했지만, 동시에 착취, 전쟁, 재난은 더욱 심화되고 기형적으로 변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종교개혁을 막 거쳐 나온 유럽 사상계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역사, 철학, 법학에서 역사의 법칙과 사상적 공명을 찾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이미 낡아 버린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기독교가 한때 지녔던 해방적·민중적·인본주의적 의미는 긍정했다. 변증법적으로 보면 이 역시 더욱 깊이 있는 지양을 위한 것이었다. 기독교와 후기 고대 그리스 철학을 비판하고 해석함으로써 역사철학의 분석을 돕고자 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역사철학은 헤겔 철학의 한 토대다.
- 관념론+객관에서 유물론+변증법으로
큰 도는 하나로 통하며, 철학사에는 새로운 일이 드물다. 스토아학파의 “신과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사상과 『도덕경』의 “하늘과 인간은 하나이며, 도가 만물을 낳는다”는 사상은 완전히 같은 것으로, 바로 훗날 말하는 객관적 관념론이다. 그리고 근대 독일 관념론에 이르는 서양 철학사의 한 주된 흐름은 셸링과 헤겔이 스피노자의 “자연신” 이론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셸링의 “절대적 동일성”과 헤겔의 “절대정신”은 모두 같은 맥을 잇고 있으며, 마침내 헤겔에 이르러 객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에 입각한 역사철학의 정점에 도달했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헤겔을 한층 더 승화한 것으로, 인류 철학의 필연적 귀결이자 현재까지의 최고봉이다.
마르크스가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에피쿠로스를 선택하고 그의 인본주의, 쾌락 철학, 유물론, 변증법을 재평가한 것은 인류 철학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마르크스 박사학위 논문의 역사적 의미다. 마르크스가 에피쿠로스의 “원자 편향설”을 중점적으로 논한 것은 철학사의 핵심적인 지점이다. 이것은 중국 도가 학설과 장자 학설에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중국 철학은 자연철학 쪽으로 나아간 정도가 너무 적다. 물론 이것은 “큰 문제는 아니다”. 서양인의 산업혁명도 그리스 철학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상공업과 자본주의 자체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원자 편향설이 다루는 것은 하나의 핵심적인 문제다. 확고한 유물론자는 인간의 영혼과 자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분석할 것인가. 오늘날의 시스템 이론과 AI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원자들의 복잡계에서 어떻게 생명이 “창발”하는가 하는 문제다. 원자는 결코 기계적이고 단순한 것일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양자역학이 크게 발전하면서 “원자”의 실제 구조가 지닌 복잡성이 인류 최고의 과학자들이 상상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 시대에는 화학이 막 근대 화학으로 나아가려던 참이었고, 가장 중요한 일은 “원소” 개념과 돌턴의 원자론이 제기된 것이었다. 인문학도이자 철학자로서 마르크스는 충분히 예리하고 지혜로웠다. 셸링 철학의 한 가지 공헌도 자연철학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몇 년 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어바흐의 유물론도 포함하여)의 주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을 단지 객체 또는 직관의 형식으로만 이해할 뿐, 감성적인 인간의 활동으로서, 실천으로서 이해하지 않고 주체의 측면에서 이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유물론과는 반대로 능동적 측면은 관념론에 의해 추상적으로 발전되었다. 물론 관념론은 현실적이고 감성적인 활동 자체를 알지 못한다.” — 이 말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수이며, 이전의 모든 유물론 및 관념론과 갈라지는 간극이기도 하다.
- 큰 도는 하나로 통하므로, 외국의 대가들은 장자를 읽어도 전혀 낯설게 느끼지 않는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외국의 대가들이 『도덕경』과 『장자』를 읽을 때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낯설게 느낄 일이 거의 없다. 큰 도는 하나로 통하며, 철학의 몇몇 기본 사상은 서양에도 있다.
중국인으로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편협한 자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많은 사람이 정말로 서양을 문화의 사막이라고 여기며 서양 철학사의 가치를 과소평가한다. 동서양이 서로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바다는 온갖 강물을 받아들인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줄곧 인도의 철학, 수학, 문화와 아랍의 수학, 철학,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왔다. 건강한 문명은 모두 인류 문명의 정수를 폭넓게 흡수한다. 문명의 융합은 서양이 성공한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외국 대가들의 독서 시야가 얼마나 넓은지 과소평가하지 말자.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프롬이 일본의 선종 대가 스즈키 다이세쓰와 함께 쓴 책 등을 보라. 이들이 선종, 『도덕경』, 페르시아, 아랍 등 세계 여러 고대 문명의 철학을 흡수하고 융합한 정도는 매우 높다.
문화는 줄곧 진화하고 변화해 왔다. 선종은 불교와 중국 현학(노장 사상)의 융합이며, 송나라의 유학 변혁 역시 도가와 불교의 요소를 흡수했다. 과거제의 유가조차 그토록 보수적이지는 않았으니, 여러분도 좀 더 열린 태도를 가져 보자.
이후 서양의 주류가 된 서양 자유주의, 오스트리아학파, 가치투자 학파도 부분적으로 스토아주의를 핵심으로 삼는다(인식의 한계에 관한 이론, 시스템의 복잡성, 역량의 범위 등이 하이에크, 드러커, 멍거 등의 저작에 나타난다. 서양 저작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스토아주의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비판 철학자 푸코 역시 저작에서 견유주의를 매우 높이 평가했으며,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켜 내라”는 표현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