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주의는 행운을 저주로 만든다
엘리트주의, 행운을 저주로 만들다
엘리트주의, 행운을 저주로 만들다
일, 운명, 엘리트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며 누구나 본래의 온전함을 지닌다는 것은 장자, 선종, 마르크스주의, 인본주의 심리학의 기본 공리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은 엘리트와 평범한 사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는 근원 역시 운이라는 것이다.
이는 나쁜 사람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법적 처분을 받아야 한다. 여기는 법정이 아니며, 그저 운명을 이야기하는 자리다.
엘리트는 운에서 나온다. 이른바 재능도 운이다. 체조 선수의 재능이 미식축구 선수의 재능보다 덜 귀한가? 바둑 기사의 재능이 e스포츠 선수의 재능보다 덜 귀한가? 그런데도 후자의 수입이 더 높다. 이것이 운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높은 수입이다. 일찍 은퇴하고 빈곤에 빠진 수많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에게 재능은 마치 저주와도 같다.
시험공부에 능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갈등이나 질병, 가난, 괴롭힘으로 학업이 중단되는 일 없이 줄곧 순조롭게 공부하고, 명문대를 졸업하고, 전공도 인기가 높고, 직장생활도 순탄하고, 승진과 연봉 인상을 거쳐 창업까지 성공하는 것은 모두 운이다. 개인의 에고에서 벗어나 한 세대의 운명을 바라보면, 재능과 노력이 하는 역할은 아주 작다.
재능을 발견하는 것 역시 운이다. 이른바 노력도 운이다. 학습된 무기력 대 자기효능감의 문제다.
이런 ‘운’에 관한 이야기는 개인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승자가 오만함과 우월감 대신 공감과 자비를 품게 하고, 패자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하려는 것이다.
이, 운은 함께 나누는 것인가, 남을 짓밟는 것인가
원시사회와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우월함이 타인을 착취하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 운은 온 부족의 운이며, 모두가 그 운을 나누어 세상의 불행에 맞선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적 단계는 분명 그렇지 않다. 토너먼트 방식이며, 승자가 독식하고, 강자가 왕이 되며, 패자는 먼지를 뒤집어쓴다.
삼, 그리하여 승자의 엘리트주의는 저주가 된다
엘리트들이 우월감을 누리고 지위를 독점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엘리트주의 서사는 분명 대중 계층을 향한 저주다.
엘리트 자신에게도, 엘리트주의의 우월감은 한때 찬란할지 몰라도 운명에는 기복과 침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엘리트주의라는 부메랑이 자신에게 꽂힌다. 《운이 좋고 권세를 누릴 때만 사회진화론자이자 엘리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대형 IT 기업 개발자와 금융업 종사자에게 흔히 보이는 모습》
엘리트 계층이 계층 하락을 두려워하며 자신과 자녀의 일생을 두고 불안에 떠는 것은 저주다. 그 때문에 보수와 혁명 저지,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입장을 굳게 지켜야 하는 것 역시 저주다.
‘실패’한 대중에게 사방에 퍼져 있는 엘리트주의는 분명 삶의 길 내내 따라붙는 저주이며, 그들은 이에 맞서야 한다.
물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집단 안에서는 부러움과 질투가 동력이 되어 엘리트를 향한 실제 저주가 생겨나기도 한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는 우주 속의 평등한 원자이며, 죽은 뒤에는 다시 우주 속의 평등한 원자로 돌아간다. 인간으로 사는 짧은 수십 년 동안 인간성의 빛을 발하지 못한다면, 그 삶은 저주가 아닐까.
엘리트주의 자체가 하나의 크툴루 세계를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