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연결 시리즈

영세 소자산가인 우리는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소박한 진선미와 연결할 수 있을까

소·영세 자산계급인 우리는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소박한 진선미와 연결될 수 있을까

앞선 글 《중국 인민과 중국 네티즌은 서로 다른 집단이자 계급이다》, 《소·영세 자산계급 포위 증후군》에 적지 않은 네티즌이 의견을 보내왔다. 자신이 소·영세 자산계급으로서 살아가는 생활과 인간관계에 노동 인민의 소박한 진선미와의 연결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실제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1. 온라인에서
    (1) 바라보기
    밑바닥 노동계급의 고단함:
    생산라인, 허베이의 제조업, 장시의 비철금속 산업, 광둥의 청바지 산업, 산시의 탄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자.
    새벽 서너 시부터 고되게 일하는 청소·환경미화 노동자들의 모습과 처우, 이들이 받는 감시를 보자.
    산업재해, 임금 체불, 사기 피해, 피를 파는 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자.
    고단함을 본 다음에는 이것도 보자.
    밑바닥 노동 인민의 소박한 진선미:
    택배·음식 배달 기사들이 사람들을 돕고 구하는 모습, 계급적 상호부조.
    밀크티 가게를 혼자 지키며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쌀알을 세어가며 음료를 만들다가 우는 여성을 위로하는 음식 배달 기사.
    멜대로 짐을 나르는 사람들, 막노동꾼,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사람들은 아버지이자 아들이다. 노새나 말이 아니다.
    원촨 지진, 충칭 산불 등 각지의 재난 구조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보여준 질서와 단결,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향하는 모습.
    밑바닥 사람들의 공익 활동, 주운 돈을 탐내지 않고 돌려주는 정직함.
    밑바닥 노동 인민의 문학과 예술:
    광부가 쓴 시, 건설 현장 농민공들의 춤.
    《핀둬둬 후기란의 문학과 재래시장의 치유》.
    농민들의 수공예품, 대오리로 엮은 바구니, 산시 농촌 여성들이 다채로운 모양으로 빚는 밀가루 음식.
    재래시장에 가지런히 쌓인 채소와 과일.
    그들은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다.
    (2) 밑바닥 인민에 대한 낙인 지우기
  2. 중등직업학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자. 시험 문제 풀이에 능한 사람들이 상상하듯 모두 노란 머리를 한 불량배가 아니다. 대부분은 몸이 여리고 말수가 적으며 앞날이 막막한 농촌 아이들이다.
  3. 사마터 문화에 관한 다큐멘터리 《사마터, 사랑해》를 보자. 기이한 옷차림에 머리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이 아이들은 생산라인에서 주 7일,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일한다. 사마터는 이들의 삶에서 유일한 색채이자, 유일하게 존재감과 개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4. 실제 농민들이 일하고 먹고 마시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자.
  5. 평소 자신이 지역 차별을 가장 심하게 하는 낙후된 성들이 항일전쟁 시기에 어떠했는지 기록을 보자.
    어떻게 전선과 팔로군을 지원했는지, 어떻게 자식을 전선에 보냈는지, 어떻게 지주와 향촌 무장대, 군벌과 비적, 일본군과 국민당 완고파에게 번갈아 짓밟혔는지 보자. 이른바 중국에서 가장 낙후되었다는 농민들이 중국이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 어떻게 나라를 구했는지, 이른바 민족성을 어떻게 구했는지, 부패한 중상층 계급을 어떻게 구했는지 보자.
    (3) 자신이 엘리트이니 밑바닥에 처하더라도 노력하고 독학해 능력을 높이면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나는 밑바닥에서 살았다: 칼럼니스트가 여성 종업원이 되었을 때》: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바쁘고 몸과 마음이 소진된다.
    《나의 2본 대학 학생들》: 자신이 985 대학이나 칭화대·베이징대 출신이라고 우쭐해하지 말자. 거기에는 통계적 요인과 계급 간 장벽이 더 크게 작용한다. 즈후의 한 답변처럼, 칭화대·베이징대 숭배를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 핵심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오만과 멸시를 깨뜨리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우월감과 서열 의식을 즐기는 것이 문제의 중심이다.
    루쉰: 전제자의 이면은 노예근성이다. 권력이 있을 때는 못 하는 짓이 없고, 권세를 잃으면 곧 노예근성으로 가득해진다.
    (4) 진정한 밑바닥 인민은 목소리도 권리도 빼앗긴 사람들이다
    996 근무제가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킨 반면, 실제 생산라인 공장들은 오랜 세월 주 7일,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심지어 그보다 더 오래 일해왔지만 그들을 대신해 외치는 사람은 없다.
    많은 사람에게 월수입 3천 위안은 밑바닥과 빈곤의 상징이다. 하지만 몇 년 전 통계에 따르면 월수입 1천 위안 미만이 6억 명, 2천 위안 미만이 거의 10억 명이었다.
    작은 가게 주인과 노점상 가운데는 매일 한두 제곱미터 남짓한 작은 칸을 지키며, 새벽에 일어나 아침 식사와 간장 양념에 조린 음식, 밀가루 음식을 만들고 밤까지 가게를 보는 사람이 많다. 즐길 거리라고는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는 것뿐이다. 하루하루, 해마다 그렇게 살아간다. 이들이 바로 많은 소시민 지식인이 얕보는 콰이쇼우 숏폼 영상의 저소득층·중소도시·농촌 이용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온라인에서 말다툼하고 논쟁할 의욕도 시간도 기력도 그리 많지 않다. 보기 좋고 참신한 사진과 영상을 찍어 세련되고 재미있는 글을 붙일 줄도 모른다. 팔로워도 없고, 목소리를 널리 퍼뜨릴 힘도 없다.
    《중국 인민과 중국 네티즌은 서로 다른 집단이자 계급이다》, 《소·영세 자산계급 포위 증후군》
  6. 현실 생활에서
    (1) 재래시장, 광장, 공공 운동장에 가기
    실제 노동 인민, 실제 평범한 사람들 사이로 다시 돌아가자. 꼭 밑바닥 사람들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학교, 사무용 빌딩, 대형 쇼핑몰, 체육관, 상업 거리, 중산층 주거 단지 안에서만 살지 말자.
    앞선 글
    《핀둬둬 후기란의 문학과 재래시장의 치유》:
    핀둬둬(PDD) 후기란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글은 흔히 밑바닥이나 농촌의 평범한 사람들이 쓴 것이다. 아주 소박하고 기쁜 칭찬이거나 가벼운 푸념이다. 첨부된 사진에는 대개 몹시 촌스럽고 가난하고 허름한 환경 속에 저렴하면서도 세련돼 보이는 PDD 상품이 놓여 있다. 인터넷을 능숙하게 다루는 소·영세 자산계급과 달리 이들은 목소리를 낼 기회가 드물기에 후기 쓰기를 진지하게 여긴다. 글과 맺는 몇 안 되는 연결이기에, 이것을 문학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무심결에 드러나는 고난과 삶의 철학은 더욱 가슴을 저미고 충격을 준다.
    때로는 실물 사진을 보려고 PDD 후기란을 뒤적이다가, 사람들이 가난한 삶을 어떻게든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거기에는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나 케테 콜비츠의 판화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반 고흐를 비롯한 많은 화가는 등이 굽고, 옷이 둔하게 부풀어 몸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그렸다. 나중에야 차츰 깨달았다. 우리 주변의 밑바닥 사람들도 바로 그런 모습이라는 것을. 그들은 때로 어수룩하게 웃고, 소심하게 움츠러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보면서 어떤 힘도 보게 된다. 들풀이 자라나는 힘이다.
    재래시장은 소박하고 활기찬 노동 인민과 가까워지게 하고, 소박한 식재료와 자연에 가까워지게 한다. 사람이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은 소시민적 괴로움에 큰 치유가 된다. 더 많은 삶의 방식을 보는 것 자체가, 천지를 보고 뭇사람을 보고 자신을 보는 일이 사람의 시야를 넓혀준다.
    새벽부터 분주한 화물차와 상인들을 보자. 바구니를 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보자. 가지런히 묶이고 쌓인 채소들을 보자. 그 뒤에는 분주하게 일하는 도시 근교와 농촌의 농민들이 있다.
    《현성 광장에서의 치유》:
    이곳은 평범한 어른들의 희로애락, 평범한 아이들의 희로애락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내가 오랜 세월 이런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나만의 작은 세계에 갇혀 있었음을. 나 자신과 소수의 희로애락에 갇힌 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그저 기호로만 여겼음을. 평범한 사람들, 노동 인민과의 연결에서 멀어졌음을. 이런 경험과 치유는 전에 썼던 운동장이나 재래시장의 경험, 공간, 분위기와도 다르다.
    여기서 나는 평범한 어른들이 삶의 고난 속에서 어떻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공감할 수 있다. 그들은 소시민처럼 벼락부자나 경제적 자유를 바라지 않는다. 구체적인 것들을 기대한다. 가족과 다시 만나 함께 노는 일, 제철 채소와 농작물, 옷 한 벌. 많은 사람이 타지에서 일하며 아주 잠깐만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만난다. 어른은 신이 나서 분수 옆에 선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지만, 아이는 분명 익숙하지 않은 듯 수줍고 뻣뻣하게 몸을 움직인다. 어떤 가족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둥글게 모여 앉아 조용히 바라보다가 이따금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다.
    많은 농촌 사람에게는 현성 광장에 와서 분수를 보는 일이 이미 시와 먼 곳을 만나는 일이다. 다른 쪽의 대형 화면에서는 영화가 나오고, 많은 사람이 서서 보고 있다. 영화가 꼭 재미있어서도, 휴대전화로 보는 것보다 더 좋아서도 아닐 것이다.
    《나는 현성 운동장에서 질서와 문명을 보았다》:
    운동장에는 농구 코트가 두 면, 하프 코트로는 네 면이 있는데, 질서정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초등학생들의 경기장이다.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이 큰 소리로 떠들고, 입에는 온갖 유행어를 달고, 갖가지 포즈를 취한다. 생기와 열정이 가득해 보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옆에서는 네댓 살짜리 아이가 공을 안고 해맑게 웃으며 따라 소리를 지른다. 하나는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코트다. 중년 남성도, 젊은 남성도, 젊은 여성도, 어린 남자아이도 있다. 하나는 본격적으로 경기하는 코트다. 4 대 4로 온갖 페이드어웨이 슛, 급정지 슛, 3점 슛이 나오고, 교대할 팀도 있다. 하나는 가족 코트다. 아주머니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데리고 와 있다.
    내가 본 것은 문명, 질서, 규칙이었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나는 중국 네티즌에게는 희망을 걸지 않지만, 중국 인민에게는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본격적으로 경기하는 코트에는 강자 숭배, 자만, 엘리트주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머지 세 코트에는 그저 스포츠, 운동, 오락, 건강, 예절이 있다.
    (2) 초등학교 앞에 가기
    소박하고 순수한 아이들 사이로 다시 돌아가고, 그 시절 소박하고 순수했던 자신의 상태로 돌아가자. 먹거리 골목에 가서 무언가를 사 먹고, 오랫동안 아이들을 상대해온 페이쥐안, 난창의 치킨 청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과 접해보자.
    아이들을 혐오하고, 아이 하면 악마부터 떠올리지 말자.
    (3) 주변의 평범한 육체노동자들과 접하기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음식 배달원, 택배 기사, 생수 배달원 등이 있다.
    굳이 말을 나누지 않더라도 아직 앳되거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얼굴을 보자. 전동 이륜차에 붙인 만화 스티커와 인형을 보자. 뒷좌석에 앉아 함께 음식 배달을 다니는 아이를 보자.
    이웃을 대하듯 오만함 없이 평등하게 말을 나누자.
    (4) 특수학교와 접하기
    2010년 말 중국의 전체 장애인 수는 8,502만 명이었다. 시각장애인은 1,263만 명, 청각장애인은 2,054만 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이들을 보지 못한다. 이들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목소리를 잃은 것과 비슷하다.
    밑바닥의 장애인은 프롤레타리아 중의 프롤레타리아다. 이들에게 공감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며 얼마나 자주 어찌할 도리가 없는 처지에 놓이는지에 공감하는 일이다.
    (5) 윈난에 가기
    순박한 사람들이 붉은 땅에서 고되게 일하면서도 여전히 진선미를 간직하는 모습을 보자. 아름다운 자연을 접하자.
    횃불 축제를 보자. 모닥불과 단순한 춤 속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소박한 예술적 율동을 되찾고, 사람과 사람이 평등하게 함께하는 춤을 경험하자.
  7. 이른바 밑바닥 사람들은 소양이 낮고 도덕성이 부족하다는 문제
    많은 소·영세 자산계급은 밑바닥 노동자와 농민 이야기가 나오면 곧바로 침 뱉기, 담배 피우기, 큰 목소리, 욕설을 떠올린다. 척박하고 험한 곳에 사는 사나운 사람들로 여기며, 소양과 도덕성, 수준이 낮고 엘리트 지식인이나 문명인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8. 소양이 낮다고 하는 행동은 도대체 어떤 부류, 어떤 직업의 사람들이 하는가?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농민, 룸펜 프롤레타리아, 파산한 소·영세 자산계급 등 서로 다른 유형으로 나뉜다. 가난한 사람도 영세 자산계급과 프롤레타리아로 나뉜다. 구분해야 한다.
  9. 소양이 낮다는 것은 누가 정의하는가? 농촌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것은 생활 습관의 문제다.
  10. 실제로 청결과 위생을 지키는 청소 노동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다. 개를 산책시키며 곳곳에 똥을 싸게 하는 것은 어느 계급이고, 길거리의 개똥을 치우는 것은 어느 계급인가.
  11. 소양이 낮다는 것이 곧 부도덕하다는 뜻인가? 사회적 해악이 크다는 뜻인가? 성매매·도박·마약, 사회적 해악이 큰 위법·범죄 행위는 어느 계급에 더 많은가? 성희롱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더 많이 일어나는가, 대학에서 더 많이 일어나는가?
  12. 나는 윈난의 현성에서 2년 동안 살았다. 접한 평범한 사람들 대다수는 아주 소박하고 소양이 높으며 온화하고 예의가 있었다. 가끔 침을 뱉는 사람이 있는 정도는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었다. 정말 나를 괴롭힌 몰상식한 행동은 큰 개를 목줄 없이 데리고 다니고 개똥을 치우지 않는 일, 오토바이로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일, 난폭 운전, 걸어가며 남을 들이받는 일, 소음으로 이웃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어느 계급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허구한 날 도로를 파헤치고 공사하다가 미완성 사업을 남기는 것은 어느 계급인가.
    먼저 상층 계급의 악과 부패를 보아야 한다. 밑바닥 계급이 침을 뱉는지부터 들여다보지 말자.
  13. 치유와 마음 수양
    (1) 소·영세 자산계급이 밑바닥 계급에 느끼는 두려움, 혐오, 배척
    앞선 글 《중국 인민과 중국 네티즌은 서로 다른 집단이자 계급이다》, 《소·영세 자산계급 포위 증후군》: ‘평범한 사람들’, 즉 발언권을 쥔 소·영세 자산계급,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흔히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농민과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농민을 낯설어하고, 상상으로 바라보며, 심지어 적대하기도 한다.
    소·영세 자산계급이 밑바닥 계급을 배척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소시민적 괴로움에서 다뤄야 할 과제 중 하나다. 그 이면에는 계급 간 장벽, 우월감과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 존재감과 실존적 위기, 원가족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가문의 과제, 지역 차별, 자기혐오, 내적 모순의 투사 등 복잡한 과제들이 있다. 한편 밑바닥 계급에 대한 배척과 두려움, 프롤레타리아 계급·사회·역사와의 단절은 그 불안과 초조, 실존적 위기를 더욱 심화한다. 이런 악순환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독일 나치가 된다.
    (2) 소시민적 괴로움
    소시민적 괴로움은 당뇨병과 같다. 아무도 치료하라고 매달리지 않는다. 당신이 치료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나 사회, 역사에는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
    지금은 계급을 나누어 비판하던 시대가 아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자신이 소·영세 자산계급이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는다.
    소시민적 괴로움을 진단하고 알아차리고 치유하는 것은 자신의 심신 건강을 위해서다. 엘리트주의, 남과의 비교, 투기 같은 소시민적 괴로움 때문에 자신이 파멸하지 않기 위해서다. 자신이 역사와 인민의 반대편에 서지 않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사회·역사와의 관계를 끊어버린 채 허무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3) 작은 나에서 본래의 나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고통 속에 있음을 보고, 계급 형제들을 보며, 냉담함과 작은 나의 울타리를 깨뜨리고 자기연민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자. 알아차림과 공감, 지혜, 자비를 키우자. 자신의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자. 마음이 곧 부처다.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려면 결국 안으로 구해야 한다. 바깥세상의 진선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진선미를 찾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본래의 온전함이 있다는 것,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것, 누구나 평범하고 한계가 있다는 것, 누구나 조건 없이 존재하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선진성 등은 마르크스와 장자, 심리학의 토대다. 치유의 토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