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마르크스와 장자가 필요한 이유
一、마르크스주의의 올바름을 입증했다
1.무질서한 경쟁, 독점 경향
인류 전체의 생산력인 AI를 두고, 파편화되고 제각각이며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자본들이 경쟁한다. 이미 독점 지위를 차지한 자들이 대중을 착취하기 위해 다시 독점 지위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다.
악성 경쟁: 사람들은 기술 진보에 환호하기는커녕 기술 진보 때문에 불안해한다. 악성 경쟁 속에서 만인이 만인을 적으로 삼는다. 인류의 생산력과 노동의 산물이 인류를 위해 봉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인류를 말살하려 한다. 이것이 소외다. 이것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2.기술, 기계, AI, 자본 등은 이윤을 창출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기계를 착취할 수 없으며, 결국 인간을 착취할 수밖에 없다》.
가치는 상품에 응결된 무차별적인 인간 노동이다. 이윤의 근원은 인간 노동에 대한 착취에 있다.
기술, 기계, 자본은 겉으로 아무리 많은 실물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더라도 이윤을 창출하지는 않는다.
기술적 우위에서 생기는 초과이윤은 흔히 해당 산업의 평균적인 인간 노동을 얼마나 대체했는가에서 나올 뿐이다. 산업 전반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 오히려 산업 전체의 이윤 수준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제철소나 화학·플라스틱 산업이 그렇다.
3.콘드라티예프 불황 주기
새로운 거품이 고전적이고 낡은 방식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이것 또한 역사적 유물론이다.
4.자유에 대한 풍자
인터넷이 30년 동안 이어 온 자유·개방·오픈소스 정신과, 2천 년 동안 축적된 글, 포럼, 문답, 코드 등 인류 공동의 지식이 모두 폐쇄적인 블랙박스의 밑천이 되었다.
5.인간 중심과 소외
AI는 우리 대신 일몰을 바라볼 수 없다. 그리고 무한한 평온함과 아름다움, 본래의 온전함은 모두 조용히 일몰을 바라보는 데 있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하지만 AI가 우리 일을 대신하면 우리는 일자리를 잃고 굶어 죽어야 하지 않느냐고. —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 선생이 연구한 자본주의의 문제다. AI가 우리 일을 대신한다면, 본래 우리는 일몰을 바라볼 시간이 더 많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물화, 과제화, 소외의 문제:
AI 때문에 많은 노동자가 걱정한다. 더는 도구 노릇을 할 수 없게 되면 어쩌지. 이런 명언이 있다. “나는 그저 한 쌍의 손을 고용하고 싶었는데, 한 사람을 통째로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二、AI는 우리가 인본주의와 인간 생명의 의미를 직시하게 한다
1.AI는 영원히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진정한 인간 지능, 인간 사이의 지능, 인간성의 지능, 사회과학적 지능.
인간의 진선미, 심미안, 사랑, 감정, 느낌과 감성.
2.AI는 심리치료사, 친구, 연인, 대자연을 대체할 수 없다.
3.AI는 인간과는 다른 지능이자 논리적 지능이며, 결코 인간 지능이 아니다
4.인본주의자는 AI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교육계와 심리학계의 많은 사람은 AI를 몹시 두려워하며, 많은 사람, 특히 아이들이 AI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본주의자는 그렇지 않다. 인간의 깊은 마음과 심오한 지능, 더 나아지고 선해지려는 소박한 진선미의 본능을 굳게 믿으며, 자신의 메타인지를 균형 있게 조절하는 인간의 능력을 믿는다.
앞선 글 《보통 사람은 어떻게 본래의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가》:
텔레비전, 인터넷, 오락실, PC방, 숏폼 영상, 모바일 게임, 웹소설 등 수많은 것이 한때 한 세대를 망칠 무시무시한 재앙으로 불렸다. 하지만 실제로 세대를 거듭해 사람들은 망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훌륭하게 성장했으며, 이런 것들에서 얻은 작은 힘으로 현실의 압박에 맞섰다. 이것 역시 엘리트주의의 내려다보는 오만함과 보통 사람의 본래의 온전함 사이의 모순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잊어버렸다.
三、장자
1.운명의 무상함
2.지식 윤리학
기술과 지식이 인류 대다수에게 이롭지 않다면, 그래도 그것을 지식이나 지혜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저주이며 공범이다.
3.정보와 지식을 잘못된 방식으로 지나치게 추구하면 참된 본성과 생명에서 멀어진다.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앎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면 위태로울 뿐이다. 지혜를 버리고 성스러움을 끊어라.
4.AI가 모방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인간의 유한성이다. 능력, 지력, 정력의 유한성이다. AI는 인간의 곤경, 어쩔 수 없음, 수용, 순응을 이해할 수 없다.
5.능력과 엘리트에 대한 집착을 다시 돌아보기
평생 능력에 집착했지만, 그 능력은 AI 앞에서 물거품이 되었다. 무능을 받아들이고 쓸모없음의 쓸모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참된 본성이다. 우리는 많은 개발자의 불안과 막막함, 광적인 열기를 보았다. 이는 건강하지 않은 상태이며,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가 여전히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 (앞선 글 《운이 좋고 잘나갈 때만 사회진화론자나 엘리트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6.쓸모없는 일을 다시 돌아보기
유명한 저작 《아무 의미 없는 일》은 현대 사회에서 상당수의 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AI가 가장 잘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다. PPT에 수를 놓고, A4 용지에 조각을 새기며, 조직 내부에서 소모전을 벌이는 일이다.
7.쓸모없음의 쓸모
인간 생명의 의미는 쓸모 있음에 있지 않다. 쓸모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강요일 뿐이며, 모든 사람이 끝없는 과잉 경쟁을 강요받고 있다.
8.대자연으로 돌아가기
기계는 인간을 위해 발명되었지, 인간이 기계를 위해 발명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기계를 위해 너무 많이 봉사했고, 너무 오랫동안 대자연에서 멀어져 있었다.
9.밖에서 구하기 VS 안에서 찾기
인간은 결국 실존적 위기, 고독, 무의미, 자유와 책임, 죽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대규모 모델을 개발할 프로그래밍 능력이나 수백만 달러의 연봉, 화려한 이력과 상장 기념 타종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집단에서는 심리적 문제와 실존적 증상이 흔히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 결국 안에서 찾고, 본래의 온전함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