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경지가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하나의 경지다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경지를 시험한다. (앞선 글 「어두운 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평범함을 받아들이기」)
인생에는 힘들고 고된 일이 늘 있다. 사람의 상태는 언제나 오르내리고 흔들린다. 본래의 온전함은 업장의 방해를 받기 쉽다. 누구나 그렇고, 고승도 그렇고, 마르크스도 그렇다.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자. 이 점을 꿰뚫어 보자.
많은 친구들이 수행에서도 여전히 문제 풀이에 매달리는 습성과 엘리트주의를 보인다. ‘경지’를 일종의 능력, ‘검증’과 ‘단련’을 거쳐야 하는 능력으로 여긴다. 여전히 공리적이고, 자신에게 가혹하며, 집착과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앞선 글 「수행자의 경지 집착 증후군」, 「새로운 작은 자아의 탄생, 수행자의 작은 자아」)
지난 5년,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내가 얻은 핵심적인 깨달음은 나에게 본래의 온전함이 있으며, 나는 언제나 원만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 정도면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피안에 도달한 것이다. 업장과 고통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별다른 집착도 없고, 내 경지가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심리적으로 몰아붙이지도 않는다. 남은 생은 그저 인생을 두루 여행할 뿐이다. (앞선 글 「깨달음을 얻은 뒤 두 번째 해」)
사람은 본래 원만하며, 아무 조건 없이 존재한다. 이른바 경지나 상태는 업장과 인연일 뿐이며,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업장 특집」, 「업장에 휘둘리는 하루는 불행한 하루다」, 「장자·바퀴벌레론」)
『장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열자가 스승과 함께 도를 닦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이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함께 돼지를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냈다는 이야기다. 『장자』와 도가에는 ‘수행’이라는 집착도 개념도 없다. (앞선 글 「수행은 허구의 개념이다」, 「노력은 허구의 개념이다」)
『장자·응제왕』: 열자는 자신이 아직 배움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고 여기고 돌아가, 3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사람을 먹이듯 돼지를 먹였다. 어떤 일에도 관여하거나 치우쳐 가까이하지 않았으며, 꾸밈을 벗고 소박함으로 돌아가, 그저 자신의 몸으로 우뚝 홀로 섰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한결같이 그렇게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