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자기와 심리학 시리즈

흔들림 없이 나답게 살고, 나를 배신하지 않기

一、오직 자신만이 안다
자신이 얼마나 멀리 걸어왔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안다.
자신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치러냈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안다.
자신이 얼마나 질척한 진창을 헤치고 나왔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안다.
자신의 자성이 찬란히 빛을 발했던 순간은 오직 자신만이 안다.
남들 눈에는 평범해 보였던 시간 동안 자신이 얼마나 가슴 졸이는 일과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겪었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안다.
자신의 어두운 면이 어떤 상처와 고통에서 비롯되었으며,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승화하고 스스로를 구원했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안다.
소리 없이 터뜨렸던 자신의 통곡은 오직 자신만이 안다.
자신이 사람과 일과 세상을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안다.
깊이 연결되는 순간에 마음이 통하며 짓는 미소를 목격하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자신의 용기와 자신감은 오직 자신만이 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는 오직 자신만이 안다.
과거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약했고, 지식과 자원도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그때 마주했던 것은 지금의 나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과거의 내가 피해 두었던 고통스럽고 끔찍한 경험들이었다.

二、자신은 유일한 목격자이자 재판관이며 해방자다
자신은 자신의 유일한 목격자다. 또한 자신의 오랜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밝혀, 자신을 무간지옥에서 풀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재판관이다.
세상의, 대타자의 시선은 기계적이다. 타인의 시선은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없다. 오직 자신의 시선에만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이 있으며, 도에 통할 가능성이 있다. 삶 속의 수많은 미제 사건과 의혹 사건은 오직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의심만으로 무턱대고 더 무거운 죄를 묻는다면, 자신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평생을 고통 속에 버텨야 한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쇼생크 감옥에서 풀어 줄 수 있다. 마음을 놓고, 해방되는 것이다. 마음이 풀리는 그날, 새장은 사라진다. 드넓은 하늘에서 새는 마음껏 날아간다.
나는 무슨 목격자도 아니고, 무슨 재판관도 아니다. 무슨 자격으로 나를 심판하는가.
나는 그저 스스로 존재하며, 무조건적으로 존재한다. 우주는 애초에 인간에게 감옥을 만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감옥은 바로 사유제 아래 소외된 이 역사 발전 단계다.

三、오직 굳건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사람은 우주의 원자이며, 인연이 모여 생명이 된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그 한평생에 할 일은 단 하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할 일도 단 하나, 현재를 살아가기다.
굳건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만 참된 나를 살아 내고 작은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굳건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만 믿음이 현실로 드러나고, 마음에 따라 처지가 바뀔 수 있다.
굳건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만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무심해지고, 도와 하나가 되어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이 곧 피안이다.
굳건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만 타고난 재능을 알고 천명을 안다. 타고난 재능이 곧 운명이며, 운명이 곧 타고난 재능이다.
굳건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만 마음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다. 마음과 정신이 하나가 되고,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 좌망, 심재, 몰입, 마음을 따르기, 소요유. 자유자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사랑해야만 타인을 믿고 사랑할 능력이 생기며, 타인도 자신을 믿고 사랑하게 된다. 자신에게 자비롭고 맑으며 자연스러워야만 타인에게도 자비롭고 맑으며 자연스러울 수 있다.
자신에게 충실하고 진실한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충실하고 진실할 수 있다.

四、자신의 뒤통수를 치지 않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지 않고, 굳건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배신이며 자신과의 연결을 끊는 일이다.
나는 수없이 내 뒤통수를 쳤다. 나를 위해 증언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들의 폄하와 모함과 집단 공격에 동조했다. 그리고 나는 내 뒤통수를 친 나를 수없이 용서했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용기를 길러 흔들림과 겁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자성은 줄곧 우리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가장 초라하고 가장 무너진 순간, 자기 뒤통수를 칠 때조차 자신을 돌보고 있는 것은 자신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성의 빛은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무너짐과 괴로움 속에서 다시 평온으로 돌아오는 것, 정신이 불길을 뚫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인간이 갓난아기 때부터 드러내는 자성이다. 자성은 언제나 벼랑 아래에서 우리 자신을 받아 준다.
자성은 안다. 자기 뒤통수를 친 그 사람은 그저 무너졌을 뿐이며, 서툴고 어리석은 방식으로 무너짐을 막으려 했을 뿐이라는 것을.
어찌 알았으랴, 자성이 본래의 온전함을 지니고 있음을. 어찌 알았으랴, 자성이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음을.
나는 내 자성을 찬미하고 싶지만, 자성은 나의 찬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자성을 묘사하고 싶고, 자성은 나를 부드럽게 바라본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따른다.
자기 뒤통수를 친 자신을 품고 보살피는 것이 바로 자신을 향한 충실함과 진실함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충실하고 진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