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새로운 유형의 에고, ‘과제 수행자’ 에고
아주 새로운 소아, ‘숙제 내주는 사람’ 소아
많은 수행자가 마음 상태와 인식이 성장했다고 느낀 뒤, 오히려 아주 새로운 소아가 나타난다. ‘노력하는 사람’ 소아와 수행자 소아의 또 다른 아주 새로운 변종, ‘숙제 내주는 사람’ 소아다.
二、숙제 내주는 사람 소아란 무엇인가
깊은 마음/리비도(업장+본래의 온전함)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일로 분주하며, 모든 것에 대응한다. 그런데 ‘나’, 즉 소아의 의식과 사고는 받아들이지 않고 이리저리 들쑤시며, 고요한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나’의 구조: 참된 내가 리비도와 함께하기》에서 리비도에 관한 이야기를 비교적 체계적으로 다루었다.
그런데 ‘나’는 리비도가 일하고, 즐기고, 쉬고, 창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 어떤 생각 하나를 ‘품게’ 되었다. 리비도 큰형님에게 숙제를 좀 내주자는 것이다. 나는 요즘 내 안의 깊은 마음을 리비도 큰형님, 또는 리비도 코끼리라고 부르곤 한다.
이런! ‘작업 감독’이 또 나타났다. 자기 착취와 자기 채찍질이 다시 시작되었다. 노력 강박과 문제풀이 모범생 병이 또 도진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三、어떤 숙제를 내주었는지 보자
리비도에게 숙제를 잔뜩 내준다. 자, 리비도야, 이 문제를 생각해 봐. 자, 리비도야, 이 주제로 글을 써 봐. 자, 리비도야, 저녁에 라이브 방송을 하자.
숙제 내주는 사람 소아는 아이와 함께 놀아 주기는 하지만, 무슨 놀이를 하든 아이에게 작문이나 감상문을 한 편 쓰라고 요구하는 사람과 꼭 닮았다.
이건 정말 무섭다.
어떤 수행자가 말했다. 가장 웃긴 건, 요즘은 가끔 공원에 가는 것조차 겁난다는 거예요. 공원에 가면 숙제 내주는 사람 소아가 튀어나오거든요. 1. 자, 리비도야,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봐. 하하, 네가 말한 그 ‘맑고 고요함’을 찾아봐.
2. 어때, 또 여기 데려와 줬잖아. 너한테 잘해 주지? 어서 전에 느꼈던 그 천인합일의 느낌, 평온한 느낌을 되찾아 봐. 편안하고 고요하고 걱정 없는 그 느낌을 찾아봐.
3. 빨리, 어서 물고기를 보고, 새소리를 듣고, 어서 나뭇잎을 보고 만져 봐.
리비도는 원래도 짜증이 나 있었는데, 숙제 내주는 사람 소아가 이렇게 들볶는 소리를 들으니 더 짜증이 난다. 공원만 봐도 겁나고, 자연만 봐도 겁난다.
四、숙제를 피하고, 소아를 피하기
어떤 수행자가 말했다. 숙제 내주는 사람 소아 때문에 한동안 리비도는 가장 아름다운 그 작은 공원에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다른 작은 숲으로 갔죠. 거기는 새로워서 몸과 마음이 온통 새로운 느낌에 빠져들었거든요. 소아도 없고, 숙제를 내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나는 공원을 피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나 자신을 피하고 있었던 거예요.
결국 리비도가 우리를 이끌고 있다. 리비도 스스로 소아와 어울려 지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면 아이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큰형님이 나를 품어 주고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五、숙제 내주는 사람 소아의 탐진치
숙제 내주는 사람 소아는 탐진치의 새로운 변종이다. 고요한 무위 속에서 자연의 흐름을 따르며, 리비도가 조용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해 주자.
몰입은 우연히 만날 수는 있어도 애써 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들 한마음으로 이 상태를 추구한다. 그런데 바로 그 추구 때문에 우리는 몰입하지 못한다.
몰입은 리비도가 흐르는 것이고, 리비도 큰형님이 춤추는 것이다. 반면 몰입을 ‘원하는’ 것은 소아가 끼어들어 어지럽히는 것이다.
예전에 실력이 부족했을 때는 가끔 완전히 새롭고 끝내주는 통찰 하나가 떠오르거나 그것을 글로 써내면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런데 지금은 ‘실력이 높아져서’,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당연히 이래야지’라고 여기며 계속 ‘또 써’, ‘왜 이제는 못 쓰는 거야’라고 한다. 탐진치로구나. 작업 감독의 착취다. 이건 실력이 높아진 것인가, 낮아진 것인가. 소박함과 무능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잃고 나면, 평범한 사람으로서 한평생을 잘 살아내기에는 부족하다.
六、고요한 무위
공원에 가는 것은 그저 공원에 가는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과제도 내주지 말자.
마음 가는 대로, 내키는 대로, 리비도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자. 아이를 모래사장에 풀어놓듯이. 인생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고요한 무위 속에서 본래의 온전함을 지닌 본아의 빛이 자신을 비추고, 업장이라는 단단한 얼음을 따뜻하게 녹여 줄 것이다.
모래사장의 그 아이처럼, 본래의 온전함을 지니고 있다. 마음껏 놀고, 탐색하고, 창조하게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