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연결 시리즈

연결은 어떻게 끊어지는가: 본래의 온전함을 지닌 아이에서 외롭고 방황하는 어른으로

연결은 어떻게 끊어지는가: 본래의 온전함을 지닌 아이에서 외롭고 막막한 어른으로

앞선 글 《연결은 장자 치유의 핵심이다》에서는 연결의 중요성, 우리가 줄곧 연결을 찾고 있다는 사실, 자기 자신과 연결되기가 어렵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이 글에서는 연결이 어떻게 끊어지는지를 쓴다. 원기를 아직 잃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흔히 부모, 동물, 자연, 자기 자신과 소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가 어떻게 자기 자신, 부모, 타인, 자연, 사회와의 연결감을 잃게 되는 것일까.

도가와 인본주의의 관점에서 인간의 성장은 본래의 온전함에서 사회화/소외를 거쳐 깨달음에 이르고, 소박한 본모습으로 돌아가 마음을 보고 본성을 밝히는 과정이다. 연결의 관점에서는 어린아이가 지닌 소박한 연결에서 연결의 단절을 거쳐 다시 연결을 맺는 과정이다. 만물을 동등하게 볼 때 비로소 삶이 열리고, 하늘과 인간이 하나가 된다.

  1. 자기 자신과 맺은, 튼튼하지 못한 소박한 연결의 단절

자기 자신과의 연결이란 자기를 돌보고, 알아차리고, 느끼고, 연민을 품으며, 조건 없이 자신을 믿고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이 충만하고 가득 차 빛나는 것, 이것이 본래의 온전함을 느끼는 근본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본래의 온전함의 토대와 핵심이 천성적으로 있다. 하지만 자기의 핵심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외상과 자원 부족(자기대상 경험 등)은 열등감-자만-자기혐오, 자기 공격/비하, 유독한 수치심, 억압, 자기 대상화, 타인에게 맞추려는 성격 등의 문제를 낳기도 한다.

앞선 글 《가혹한 초자아와 자기 공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1. 부모와의 연결의 단절

상당히 많은 사람이 부모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경험을 한다.

초기에는 유기적인 상호작용, 돌봄, 관심 등 건강한 연결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 자신의 심리적 과제 등의 요인으로 연결이 차츰 끊어진다.

인터넷에 이런 흥미로운 질문이 있다. “왜 초등학교 4학년/10세 이상 자녀의 모습을 위챗 모멘트에 올리는 부모는 줄어들까?” 부모는 중년의 위기로 들어서고, 아이는 사회화/소외/과잉 경쟁의 길로 들어선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추상적인 장래/성적/노력/지위/계층 이동에 더 많이 초점을 맞추게 된다.

  1. 사회화≈소외

앞선 글 《소도시 문제풀이 수재의 괴로움》: 과잉 경쟁에 대한 강박,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상태, 토너먼트식 악성 경쟁, 또래 간 과잉 경쟁, 일차원적 가치관, 우월감에 대한 욕구 등은 학생들을 주변 사람들, 하층민들과 점차 단절시킨다.

몸과의 연결의 단절: 몸의 소외와 도구화. 몸과의 연결감이 약하면 문제풀이를 하거나 약을 먹는 등의 방식으로 몸에 대응하기 쉽다.

마음과의 연결의 단절: 자신을 억지로 고무하고, 자신을 비하하고, 스스로를 심리적으로 조종하고, 자신의 미루는 습관을 비판하는 등의 방식으로 침체기에 대응하며, 자신의 여러 감정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줄 모른다. (앞선 글 《미루기 장애는 허구의 개념이다》, 《개인의 문제는 대부분 사회의 문제다》, 《어두운 면 받아들이기》)

우리는 폭식, 정크 푸드, 밤샘, 술 등 몸을 혹사하는 방식으로 감정의 고통과 내면의 공허, 불안을 “누그러뜨린다”.

《대학생의 기본 모순》에서 다룬 주변 사람들과의 모순: 주변 사람들은 같은 부류이자 같은 처지에 놓인 동행인인 동시에, 과잉 경쟁과 허영심, 또래 간 비교, 능력주의 속의 경쟁자이기도 하다. 자신의 우월감과 특별하다는 느낌에 영향을 미치는 타인이기에, 대인관계를 둘러싼 내적 모순이 생긴다. 동시에 내면의 자기 의심과 비판 같은 모순을 외부로 투사하기도 한다.

  1. 타인과의 단절

앞선 글 《소시민적 괴로움》: 소외, 계급적 배척, 자기혐오 등의 과제는 자연스럽게 강렬하고 구제할 수 없는 외로움으로 이어진다. 앞서 언급한 “일하는 방식” 부분에서 말했듯, 프롤레타리아와 달리 소시민에게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없다. 소시민 대부분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으며, 이들은 그 진실을 회피한다. (앞선 글 《사교: 동지, 지기, 절친, 친구의 차이》)

사람들이 고통의 패턴, 심리적 패턴, 병적인 관계 패턴을 반복하는 것 역시 대인관계에서 고통을 되풀이하게 한다.

앞선 글 《사회적 관계의 선별》: 사람을 거르는 데는 엄격하고, 자신을 대하는 데는 너그러워야 한다. 서로 존중하고 서로를 북돋아 주는 관계를 선별한다.

  1. 자연과의 단절

소도시 문제풀이 수재 출신인 한 누리꾼이 전형적인 경험을 기록했다.

일곱 살에 농촌을 떠나 더 깨끗한 도시로 갔다. 그때부터 십여 년 동안 자연과 작별하고, 사회화되고 소외되며, 얄팍하고 메마르고 일차원적이며 단일한 가치관에 갇힌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북방은 녹지와 식생이 다소 빈약하다. 상하이의 조경 식물도 연결감을 느끼게 하기는 꽤 어렵고, 오히려 “작은 자아, 아집, 아상, 중생상”을 자극하기 쉽다. 상하이의 꽃과 풀이 있는 공원은 너무 정교하고, 나무들은 너무 가지런하며, 사람의 손길이 너무 짙다. 이런 분위기를 누리려면 근처 집값과 월세가 얼마인지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여러 곳을 거쳐 윈난에 이르기까지 그랬다. 앞선 글 《항저우 시후와 베이징 올림픽삼림공원은 왜 작은 현성의 공원보다 내게 치유가 되지 못할까》: 시후 호숫가에 있으면 나는 늘 생각한다. 시후는 참 아름답고, 참 특별하다. 역시 시후답다. 그런데 농촌 소도시의 문제풀이 수재인 나는 어떤 조건들을 충족했기에 이곳에 올 수 있었을까.

작은 현성의 공원에서는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공원에서 소박한 옷차림을 한 평범한 사람들도 모든 것이 조건 없이 조화를 이룬다고 내게 말해 준다. 자연을 보고, 나무와 잎, 새, 물고기, 꽃, 마른 가지, 낙엽, 구름을 본다. 나는 세부에 몰입하고, 전체에 몰입한다. 아상도 없고, “공원”이라는 상도 없다.

도가에서는 얻기 어려운 것을 귀하게 여기지 말고, 소박한 본모습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1. 인민 및 사회와의 단절

농촌을 떠나온 많은 아이가 성장 과정/원가족과 가문의 그늘과 외상 때문에 농촌, 농촌 사람들, 자연과의 연결을 잃는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대체로 농촌 출신 중 여전히 농촌을 좋아하고, 농촌 사람들이 소박하다고 느끼며, 자연과 전원 풍경이 아름답고 에너지가 넘친다고 느끼는 사람은 심리적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더 작고 깨달음에 이를 가능성이 더 크다. 인민, 자연, 사회와의 연결이 그들을 길러 주기 때문이다. 또한 지나친 소시민적 괴로움을 막아 주기도 한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 가운데는 “농촌”, “농촌 사람”, “하층민”이 매우 낯선 경우가 많아, “척박한 산과 험한 물에서 고약한 백성이 나온다”는 선전에 흔들리기 쉽다. 안타깝게도 때로는 이들에게 인민을, 노동자와 농민의 소박한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한편 소규모·영세 자산계급과 하층민의 단절은 계급적 속성이다. 앞선 글 《소시민적 괴로움》: 소규모·영세 자산계급이 하층계급을 배척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소시민적 괴로움의 한 과제다. 그 배경에는 계급 간 구별 짓기, 우월감과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 실존적 위기, 원가족과 가문의 과제, 지역 차별, 자기혐오, 내적 모순의 투사 등 복잡한 과제가 있다. 그리고 하층계급에 대한 배척과 두려움, 프롤레타리아 및 사회, 역사와의 단절은 이들의 불안과 초조, 실존적 위기를 더욱 심화한다. 이런 악순환이 극단에 이른 것이 독일 나치다.

이전에 알아차림을 위한 글로 《중국 인민과 중국 누리꾼은 서로 다른 집단이자 계급이다》, 《소규모·영세 자산계급에 둘러싸였다는 강박》 등을 썼다. 모두 사람들의 인식 오류에 깔린 사회학적 배경을 다룬 글이다.

분별하는 마음, 구별 짓는 마음, 리바이어던 숭배,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은 사람들과 다른 나라 및 인종 사이의 연결을 끊고, 오히려 대립하게 한다.

  1. 역사와의 연결의 단절

《마르크스주의는 사회과학이라는 방 안의 코끼리다》. 20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와 좌파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주류 이데올로기는 혼란스러워졌고, 신자유주의에 각종 우파 사상이 뒤섞였다.

노동자·농민의 서사와 역사유물론의 서사는 사라지고, 영웅사관, 엘리트 사관, 휘그 사관이 지배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역사관은 혼란에 빠졌고, 역사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1. 우주와의 연결의 단절

달과 별은 사람들이 우주와 연결되는 첫 번째 지점이며, 농촌 아이들이 누리는 큰 이점이기도 하다.

우주의 광대함을 체험하는 것 역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매우 흔한 방법이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고개를 들어 별을 보지 않았을까.

  1. 연결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층 인민의 소박한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에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핀둬둬 댓글란 문학과 재래시장의 치유》: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고통을 겪고 있음을 보고, 계급 형제들을 보며, 냉담함과 작은 자아를 깨뜨리고, 자기연민과 자기혐오를 뚫고 나와 알아차림과 공감, 지혜, 자비를 키운다. 천지를 보고, 중생을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적 관계의 선별》: 사람을 거르는 데는 엄격하고, 자신을 대하는 데는 너그러워야 한다.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본래의 온전함을 느낄 수 있을까》: 역사, 인민, 사회, 타인, 자연, 우주와 연결된다. 자기 자신(몸, 깊은 감각과 느낌, 감정, 리비도)과 연결된다.

《나의 구조: 참된 내가 리비도와 동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