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장자 시리즈

장자: 본래 여유롭고 거침없이 살아야 했다

장자: 본래는 느긋하고 여유로워야 했는데

장자: 본래는 느긋하고 여유로워야 했는데, 지금은 허둥지둥 구르고 기어가고 있다.
최근 “본래는 느긋하고 여유로워야 했는데, 지금은 허둥지둥 구르고 기어가고 있다”라는 말이 대만해협 양안은 물론 중국어권 전역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유인유여’, 곧 칼날을 놀릴 여유가 있다는 말은 《장자·양생주》의 포정이 소를 잡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이 말 자체에 담긴 ‘철리’도 장자의 사상과 잘 어울린다. 삶은 본래 자유롭고 느긋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고, 깊이 있으며, 실용적이고, 곱씹을수록 끝없는 맛이 나는 것, 이것이 장자 철학의 문체적 특징이기도 하다.
《장자》에서 유래한 성어는 약 200여 개에 이르며, 그 철리는 중국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A. ‘양생’은 장자가 말하는 본성과 생명에 관한 학문이다. 사람들이 본성을 해치고 목숨을 잃는 까닭은 이렇다.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면 위태로울 뿐이다. 때를 편안히 받아들이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면 슬픔과 기쁨이 끼어들지 못한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이른바 ‘매임에서 풀려남’이라고 한 것이다.”(해탈의 길)
《장자·서무귀》: “몸과 본성을 내달리게 하여 만물 속에 빠져들고는 평생 돌아오지 못한다.”
B. 《장자·제물론》: “한번 몸을 받아 태어나면 그것을 잃지 않으려 하며 다할 때까지 버틴다. 외물과 서로 맞서고 서로 닳아 없어지며, 내달리듯 살아가면서도 아무도 이를 멈추지 못하니, 이 또한 슬프지 않은가! 평생토록 분주히 일하면서도 이룬 것을 보지 못하고, 지칠 대로 지쳐서도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하니, 애처롭지 않은가.” “큰 앎은 너그럽고 넓으며, 작은 앎은 잘게 나누어 따진다.”
C. 《장자·선성》에서는 “고요함으로 앎을 기른다”라고 말한다. “외물 때문에 자기를 잃고 세속 때문에 본성을 잃는 사람을, 삶이 뒤집힌 백성이라고 한다.”(이 말은 마르크스의 소외 철학, 그리고 머리와 발이 뒤바뀐 것을 바로잡는 변증법의 핵심과 일치한다.) 이 편에서 나온 성어로는 ‘우연히 찾아온 외물’, ‘뿌리를 깊이 내리고 지극한 고요에 머무름’,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고 뜻을 이룸’, ‘벼슬과 지위로 뜻을 마음껏 펼침’, ‘궁핍하여 세속을 좇음’, ‘세속 때문에 본성을 잃음’ 등이 있다.
D. 《선성》에서 은사를 논하다:
도가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고 세상도 도를 통해 일어날 수 없다면, 성인이 산림 속에 있지 않더라도 그의 덕은 숨어 있는 셈이다. 숨어 있는 것이지, 일부러 자신을 숨기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이른바 은사라고 한 사람들은 몸을 감추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입을 다물어 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며, 자신의 앎을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다. 시대와 운명이 크게 어긋났을 뿐이다. 시대와 운명에 부합하여 천하에 크게 뜻을 펼칠 수 있으면 하나의 도로 돌아가 자취를 남기지 않고, 시대와 운명에 부합하지 않아 천하에서 크게 곤궁해지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지극한 고요에 머물며 기다린다. 이것이 자신을 보존하는 길이다. — 마르크스주의가 처한 상황도 이와 같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이 모두 냉대를 받는 것은 그 이치가 틀렸거나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두 정세 때문이다. 혁명의 침체기에 레닌은 시베리아와 오스트리아에 은거했고, 주더·마오쩌둥·펑더화이는 산림에 은거했으며,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에 빠졌다. 군자는 곤궁 속에서도 지조를 지킨다.
E. 《장자·지락》에서는 죽음의 즐거움을 논한다.
해골이 말했다. “그대가 말한 것은 모두 산 사람의 얽매임이오. 죽으면 그런 번뇌는 없어지지. 그대는 죽은 뒤의 즐거움을 알고 싶소?” 장자가 말했다. “알고 싶소.” 해골이 말했다. “사람이 죽으면 위로는 군주가 없고 아래로는 신하가 없으며, 사계절 내내 수고해야 할 일도 없소. 느긋하고 자유롭게 천지와 함께 오래가니, 남쪽을 향해 앉아 왕 노릇을 하는 즐거움조차 이에 미치지 못하오.” 장자는 믿지 않고 말했다. “내가 생명을 주관하는 신에게 그대의 형체를 되살리고 뼈와 살과 피부가 자라나게 하여, 그대를 부모와 아내와 자식, 이웃과 아는 사람들 곁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한다면, 그대는 그러고 싶소?” 해골은 이 말을 듣고 미간을 깊이 찌푸리고 이마를 잔뜩 좁히며 말했다. “내가 어찌 남쪽을 향해 앉아 왕 노릇을 하는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인간 세상의 수고로움으로 돌아가겠소?”
《열자·천서》: 열자가 위나라로 가다가 길에서 음식을 먹는데, 따르던 사람이 백 년 된 해골을 발견했다. 열자는 쑥을 헤치고 그것을 가리키며 제자 백풍을 돌아보고 말했다. “오직 나와 저것만이 일찍이 태어난 적도 없고 죽은 적도 없음을 아는구나. 이것을 괴로워할 일인가? 이것을 기뻐할 일인가?”
F. 《장자·재유》: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정신을 품고 고요히 있으면 몸은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다. 반드시 고요하고 맑게 하여, 그대의 몸을 수고롭게 하지 말고 그대의 정기를 흔들지 않아야 오래 살 수 있다.”
G. 《장자·소요유》: “천지의 올바른 흐름을 타고 여섯 기운의 변화를 부리며 무궁한 세계를 노니는 사람이라면, 그가 또 무엇에 기대겠는가.”
11.12 선성
도가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고 세상도 도를 통해 일어날 수 없다면, 성인이 산림 속에 있지 않더라도 그의 덕은 숨어 있는 셈이다. 숨어 있는 것이지, 일부러 자신을 숨기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이른바 은사라고 한 사람들은 몸을 감추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입을 다물어 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며, 자신의 앎을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다. 시대와 운명이 크게 어긋났을 뿐이다. 시대와 운명에 부합하여 천하에 크게 뜻을 펼칠 수 있으면 하나의 도로 돌아가 자취를 남기지 않고, 시대와 운명에 부합하지 않아 천하에서 크게 곤궁해지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지극한 고요에 머물며 기다린다. 이것이 자신을 보존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