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마르크스 시리즈

우리 세대는 어쩌면 소자산계급의 정점을 목격했는지도 모른다

앞서 「인구 구조: 대졸자 배당, 엔지니어들의 과잉 경쟁이 낳는 배당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산업 고도화가 아니라 세계 산업의 하향화다」를 쓴 바 있다. 현재 대학 교육은 이미 중국,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등 제3세계 국가들에 널리 보급되었다. 대졸자 배당이 가져오는 결과는 중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졸자들의 과잉 경쟁이 낳는 직접적인 결과는 선진국, 선진 산업, 개발도상국을 분쇄하는 것이다. 부차적인 결과는 전 세계 소부르주아 계급이 의존해 살아가는 공간, 즉 독점에서 얻는 이익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더, 의사, 금융업 종사자, 변호사 등 전통적인 고급 직종에서 과도한 내부 경쟁과 처우 하락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세대는 어쩌면 소부르주아 계급의 정점을 목격했는지도 모른다. 소부르주아 계급이 인구수와 영향력에서 누린 최고의 전성기 말이다.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점잖고 교양 있으며, 고전적 자유주의를 좋아하던 소부르주아들의 소멸은 그 계급의 낙후성, 무용성, 역사적 일시성을 보여줄 뿐이다. 이는 중산층, 전 국민의 중산층화, 사회민주주의라는 꿈의 파산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소부르주아라는 압력 배출구와 환상의 상실은 사회문화와 소비문화에 거대한 전환점이 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도 투자에 관한 생각을 자극하려는 데 있다. 앞서 쓴 「투자, 역사적 변혁기에 놓여 있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계급사회의 계급 상승 통로는 최후의 압력 배출구다. 과거제는 중국의 문인들이 1,000여 년 동안 기꺼이 봉건주의의 노복이 되게 했다. 노력이 통한다는 논리에서 과잉 경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논리로, 엘리트주의에서 사회진화론으로 바뀌어 간다.

물론 이것이 소부르주아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극소자산 계급은 더욱 반동적이고 더욱 소외된 계급이다. 2010년대생, 2020년대생 대학생들은 ‘경제 상승기’라는 현상을 발견하고, 더 이상 1970년대생, 1980년대생처럼 소부르주아 계급으로 올라가기를 꿈꾸지 않으며, 공공부문 정규직 채용시험과 철밥통을 차지하려고 미친 듯이 경쟁한다. 안정과 아주 적은 자산을 위해 많은 사람이 기꺼이 감수하는 희생과 자기 봉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일부 현상은 한 세대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이 아니라 역사의 전환점이다. 1789년부터 1945년까지의 역사를 보라. 역사는 끊임없이 전진하며 근본적으로 변혁되어 왔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간 이어진 평화로운 발전과 두 차례의 콘드라티예프 주기가 사람들을 일종의 ‘평온한 일상’이라는 일시적 상태에 익숙해지게 했을 뿐이다.

10억 명 규모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우리 세대는 농민 계급의 퇴장을 목격했다. 농촌 인구가 프롤레타리아 계급, 즉 농민공과 농업 노동자로 변한 것은 계급 구조에서 가장 큰 변화였다. 이어서 우리는 소부르주아 계급의 퇴장도 목격했다.

8억 명의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2억 명의 소자산·극소자산 계급이 기본 바탕이며, 보나파르트적 균형의 토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