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장자 시리즈

일과 휴식의 조화에 관한 짧은 이야기

일과 쉼의 조화에 관한 짧은 생각
일、리듬과 운율
(일) chill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과 쉼의 조화 -> 리듬과 운율 -> 느긋함과 chill이다. 무작정 자신을 다그치며 긴장하면 반드시 휴식을 소홀히 하게 되고, 효율도 그리 높지 않다. 속도를 늦추면 피로와 흐트러진 리듬을 쉽게 느끼게 되고,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바르게 일하고 바르게 쉬기: 바른길 위에서 일과 쉼을 조화시킬수록 본연의 나는 더 평온해지고, 삶은 점점 더 좋아진다
반대로 업장의 간섭과 방해를 많이 받을수록, 갈팡질팡하며 막막해할수록, 쓸데없이 일을 벌이며 해로운 방종에 빠질수록 더 나빠진다.
바르게 일하고 바르게 쉬며 바른길을 곧게 가는 것, 아주 단순한 이치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장자: 쓸모 있음 VS 쓸모없음, 유용함 VS 무용함
(일) 쓸모 있음 VS 쓸모없음
《장자》 내편은 ‘무용’의 도를 이야기한다. 외편에는 제자들이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에 관한 이야기를 적었다. 장자의 제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큰 나무는 쓸모가 없어 목숨을 부지하고, 거위는 쓸모가 없어 쇠솥에 삶아지니, 도대체 쓸모가 있어야 하는가, 없어야 하는가.
장자는 웃으며 말했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사이에 머물겠다. 하지만 이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도와 덕을 타고 노닐며, 때에 따라 함께 변화하고, 어느 한 가지에 집착하지 않는다. 만물의 근원에서 노닐며, 사물을 사물로 대하되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하려 하고 구하는 바가 있으면 좌절과 모욕을 겪게 된다.”
이것이 장자의 제자들이 품었던 핵심적인 고민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고, 일을 하면 소요할 수 없으니, 어찌해야 하나.
마르크스는 인간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말했다. 인간이 사회에서 벗어나고, 노동에서 벗어나고, 쓸모 있어야 한다는 데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인생은 언제나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노동과 움직이지 않음’ 사이의 변증법 속에 있다. 이것이 바로 일과 쉼의 조화다.
사람이 노동에서 벗어나고, 번거로움과 업장에서 벗어나 오직 쉼만 누린다면 신선일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그런 사람은 몇 나오지 않았다.
(이) 장자의 생계학
《장자》에는 열자가 돼지를 기르고, 경상초가 농사를 짓고, 장자가 돈을 빌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아주 현실적인 노동과 입에 풀칠하는 일, 생존의 문제다. 《장자》가 높이 평가하는 생계 방식은 생산에 종사하지 않은 채 신선 수련에 성공해 남들이 공양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릇된 길이다.
장자는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았고, 열자는 스스로 얻은 것이 없다고 여겼다. 마을 사람들이 경상초를 받들어 모시려 하자 경상초는 서둘러 떠나 인과의 얽힘에 휘말리지 않았다. 능력을 내세우지 않고 억지로 행하지 않으며, 욕심도 구하는 것도 없고, 남의 스승이 되기를 즐기지도 않았다.
마르크스는 미국 신문에 대중을 위한 해설 글을 기고하며 생계를 꾸렸고, 몹시 가난했을 때는 사무직에 지원할 생각까지 했다. 엥겔스는 방직 공장에서 일했다. 모두 형편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삼、운명
인간의 짧은 일생은 이렇게 일과 쉼 사이에서 소리 없이 흘러간다. 헤엄치는 물고기나 날아다니는 새,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밀이 수십 번 익었을 뿐이다.
일에도 쉼에도 한계가 있다. 마르크스는 평생 고되게 일했지만 《자본론》 세 권을 다 쓰지 못했고, 무슨 소비에트 국가를 세운 것도 아니다.
주어진 형편에 편안히 머무는 것. 한 인간은 유한하며, 그저 현재 상황에 순응하고, 현재를 살아가기를 실천하며, 일과 쉼을 조화시킬 뿐이다. 바깥의 사람과 일, 시대의 형세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가?
사、일과 쉼을 조화시키지 못할 때
(일) 긴장에 익숙해져 긴장과 불안을 안전으로 여긴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긴장에 익숙하고, 긴장과 불안을 안전으로 여긴다. 얼마나 모순적인가. 긴장과 불안을 노력, 분투, 발전과 한데 묶는다.
(이) 낮은 효율과 저조한 상태에 익숙해져 알아차림이 부족하다
(삼) 과도한 생각
과도한 생각은 흔히 볼 수 있고, 일상에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만 마음 수련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중요하게 다루는, 일과 쉼의 조화에 어긋나는 일이다.
따로 글을 써서 자세히 논하겠다.
(사) 업장은 어떻게 쉬려는 본능을 억누르는가
‘본연의 나에게는 본래의 온전함이 있다’는 하나의 공리다. 여기서 출발해 다른 것들을 도출한다.
가장 중요한 공식 하나는 업장이 어떻게 사람의 본능을 억누르고 건강에서 멀어지게 하는가이다.
예를 들어 앞서 쓴 《자기 절제가 곧 자유라는 말은 허위 개념이다. 자유로우면 스스로 절제한다》에서, 자기 절제는 인간의 본능인데 ‘자기 절제를 하지 않음’은 어떻게 사람들의 본능을 이겨 내는지를 다뤘다.
오늘 이야기하는 것은 그때그때 일과 쉼을 조화시키고 쉬는 일이다. 포모도로 기법은 인간의 본능이다. 삼사십 분 동안 바삐 움직이면 몸을 좀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하지만 사람은 흔히 꼼짝없이 버티며 굳어진 상태에 놓인다.
(오) 흐름이 끊기는 것이 두렵다면, 무엇이 끊기는 것인가?
진정한 마음챙김과 높은 효율은 흐름이 끊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업장과 작은 자아는 흐름이 끊기는 것을 두려워한다. 작은 자아는 어렵사리 실체를 지닌 생명으로 살아나 검은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건강한 사람은 늘 생기 있고 유연하며,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굳어 있다. 그 배후에는 업장의 시체 독이 있다.
(육) 흥분제와 피로제
중년에 이르면 들뜨고, 바쁘게 지내고, 마음챙김을 하고, 성과를 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쉬고 긴장을 푸는 일이 조금 더 어렵고, 수양의 깊이가 더욱 시험받는다.
나는 흥분제가 아니라 피로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산책하며 거니는 것은 긴장을 풀고 쉬는 일이면서 운동이기도 하고, 몸과 마음에 딱 알맞은 피로를 가져다주어 비정상적인 흥분과 초조함을 소모할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철학자들이 가장 사랑한 활동이라 할 만하다.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도 장거리 달리기도 아니다. 날아오르며 자유롭게 노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