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가 떠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드러누워 경쟁을 포기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노라가 떠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탕핑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一、많은 젊은이가 묻는다. 너무 막막한데, 도대체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인생은 어린 말이 강을 건너는 것과 같아서, 스스로 물에 들어가 길을 찾아야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조언해 줄 능력이 없다. 과제를 분리하고, 타인의 운명을 존중하자.
젊은이가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어떤 방향을 택해야 하는지 묻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묻게 되는 것은 성장의 다음 이정표다. 탐색의 길에서 절반 가까이는 올바르게 나아간 셈이다.
막막함은 흔하다. 주로 심리학의 ‘성장과 발달’, 즉 정신분석학, 발달심리학, 긍정심리학이 관심을 두는 내용이다.
二、마르크스, 장자, 심리학의 체계가 필요하다
앞선 글:
《마르크스와 장자는 평범한 사람, 탕핑하는 사람의 철학이다》. 마르크스와 장자는 평범한 사람의 등대다.
《마르크스, 장자, 심리학: 아래로부터의 마르크스주의》:
평범한 사람인 우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이버펑크 세계의 원자화된 개인으로서 틈바구니에서 살아갈 것이다. 평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이 틈바구니와 소외 속에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실용적인 철학이다. 세계관·인생관·가치관, 행복과 즐거움의 철학, 정신위생 지식이다. 즉 마르크스, 장자, 심리학을 통해 소외되고 메마른 외부 환경에서 타인·세계·사회·역사와 연결되는 소박한 진선미를 가려내어 받아들이고, 마음에 양분을 주어 본래의 온전함을 지닌 마음이 충분히 발달하게 하는 것이다.
四、더 이상 밖에서 구하지 않고 안에서 찾기
간단한 답은 마르크스주의(사회과학 체계의 정점), 인본주의(본래의 온전함, 평등하고 원만한 마음), 실존주의(무조건적인 존재, 현존, 자재)다. 간단한 방법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사회는 소외되어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본래의 온전함을 지니고 있으며 평등하고 원만한 마음, 무조건적인 존재와 현존, 자재, 쓸모없음의 쓸모를 지닌다. 이것이 바로 훨훨 날아가는 장자의 나비다. 앞선 글 《길리건 심리학: 나와 가장 가까운 심리학 학파》
노라가 떠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마음이 편안한 곳이 내 고향이다.
하지만 이런 성장에는 어쩌면 여러 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나는 서른 살이 되어서야 마르크스주의에 귀의했고, 서른네 살이 되어서야 장자를 깨달았다).
앞선 글 《고난은 나를 삼키지 못했고, 내 마음에는 연꽃이 피었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조건부 자신감을 거쳐 무조건적인 자신감에 이르기까지 몇 년이 필요할까? 여러 해다. 조급해한다고 소용이 있을까? 없다. 사람이 이 진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앞선 글 《수행은 허구의 개념이다》
五、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많은 사람: 드디어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군)
이걸 누군가 대신 답해 줄 수 있을까?
사람은 결국 먹고, 돈을 벌고, 생존하고, 발전해야 한다. 자신이 납득하는 인본주의적 길, 학업·일·사회적 교류의 선순환을 탐색해야 한다. 자신을 이루고, 타인이 이루도록 돕고, 타인이 다시 자신을 이루도록 돕는 선순환이다. 프롬이 말한 ‘생산성’, 매슬로가 말한 자아실현이다.
예술, 운동, 프로그래밍, 개인 미디어 등등, 당신의 길을 누가 알겠는가. 리비도다. 앞선 글 《마음의 힘/리비도》가 운명을 결정한다.
하지만 서두를 수는 없다. 자신의 속도에 맞추자. 마르크스가 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죽을 때까지 《자본론》을 완성하지 못했으며, 세계혁명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보라.
해 줄 수 있는 말은 빈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때를 편안히 받아들이며 운명에 순응하라는 것뿐이다. 위인들의 확고함과 활달함을 보고 마음을 놓을 뿐이다. 빈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할수록 빈부에 얽매이게 된다.
앞선 글 《장자가 말하는 군자는 곤궁 속에서도 지조를 지킨다》
《개인의 문제는 흔히 사회의 문제이자 인류의 문제다》
(많은 사람: 결국 어떻게 부자가 되고 어떻게 성공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네. 주식 종목 코드도 안 알려 주고, 괜히 읽었잖아).
하하.
六、앞선 글 《일과 휴식의 조화에 관한 짧은 생각》(발췌):
(一) 리듬과 운율
- chill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과 휴식의 조화 -> 리듬과 운율 -> 느긋함과 chill이다. 무작정 자신을 다그치며 긴장하면 반드시 휴식을 소홀히 하게 되고, 효율도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속도를 늦추면 피로와 흐트러진 리듬을 느끼기 쉬워지고,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바르게 일하고 바르게 쉬기: 바른길에서 일과 휴식을 조화시키는 시간이 많을수록 본연의 자아가 더 평온해지고, 점점 더 좋아진다
반대로 업장의 방해를 받고 흐름이 끊기는 일이 많을수록, 헤매고 막막해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헛되이 애쓰고 해로운 방종에 빠지는 일이 많을수록 더 나빠진다.
바르게 일하고 바르게 쉬며 바른길을 곧게 가는 것, 아주 단순한 이치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二)장자: 재목이 됨 VS 재목이 되지 못함, 쓸모 있음 VS 쓸모없음 - 재목이 됨 VS 재목이 되지 못함
《장자》 내편은 ‘쓸모없음’의 도를 말한다. 외편에는 제자들이 ‘재목이 됨과 재목이 되지 못함’의 이야기를 적었다. 장자의 제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큰 나무는 쓸모가 없어 겨우 살아남았는데, 거위는 쓸모가 없어 솥에 삶겼으니, 도대체 쓸모가 있어야 하는가, 없어야 하는가.
장자는 웃으며 말했다. “재목이 되는 것과 되지 못하는 것 사이에 머물겠다. 하지만 이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도와 덕을 타고 노닐며 때와 함께 변화하고, 어느 한쪽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만물의 근원에서 노닐며, 사물을 사물로 대하되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하려 하고 구하는 것이 있으면 좌절과 수모를 겪게 된다.”
이것이 장자 제자들의 핵심적인 고민이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고, 일하면 소요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르크스는 인간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말했다. 사람이 사회에서 벗어나고, 노동에서 벗어나고, 쓸모 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인생은 언제나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노동과 움직이지 않음’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 있다. 이것이 바로 일과 휴식의 조화다.
사람이 노동에서 벗어나고, 번뇌와 업장에서 벗어나 휴식만 남는다면 신선일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그런 사람은 몇 나오지 않았다. - 장자의 생계론
《장자》에는 열자가 돼지를 기르고, 경상초가 농사를 짓고, 장자가 돈을 빌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아주 현실적인 노동, 생계, 생존의 문제다. 《장자》가 높이 평가하는 생계 방식은 생산에 종사하지 않은 채 신선이 되는 수행을 이루고 남들이 공양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삿된 길이다.
장자는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고, 열자는 스스로 얻은 것이 없다고 여긴다. 마을 사람들이 경상초를 받들어 모시려 하자, 경상초는 인과의 얽힘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서둘러 떠났다. 능력을 내세우지 않고 억지로 행하지 않으며, 욕망도 구하는 것도 없고, 남의 스승이 되기를 즐기지도 않는다.
마르크스는 미국 신문에 대중을 위한 해설 글을 기고하며 생계를 꾸렸고, 너무 가난해서 사무직에 지원할 생각까지 했다. 엥겔스는 방직 공장에서 일했다. 모두 형편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三)운명
사람의 짧은 일생은 이렇게 일과 휴식 사이에서 소리 없이 흘러간다. 헤엄치는 물고기나 나는 새 같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밀이 수십 번 익었을 뿐이다.
일도 휴식도 한계가 있다. 마르크스는 평생 고되게 일했지만 세 권의 《자본론》을 다 완성하지 못했고, 어떤 소비에트 국가를 세우지도 못했다.
주어진 처지에서 편안히 지내자. 한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다. 그저 지금의 상황에 순응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일과 휴식을 조화시킬 뿐이다. 외부의 사람과 일, 시대의 형세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