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와 초일류인 사람하고만 교류하라
일류, 초일류이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편안함, 자유로움, 힘이 솟는 느낌, 공명, 뜻밖의 기쁨, 마음챙김, 고요함, 커다란 용기, 커다란 밝음. 인간과 자신을 밝게 신뢰하는 마음이 열리게 된다.
당신이 서툴러하고 애쓰는 모든 지점을, 입을 열 필요도 없이 상대는 단번에 알아본다. 그러면 더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만 명의 사람에게 애써 설명하고 싶지 않게 된다. 이미 큰 강을 찾았으니 더는 사막에서 젖은 모래를 쥐어짜지 않는 것과 같다. 당신을 비판하는 만 명의 사람과 논쟁하고 싶지도 않게 된다. 해안의 높은 산에 서서 파도를 내려다보듯, 범속한 이들의 소란이 당신을 집어삼킬 수는 없다.
당신이 회피하고 억누르며 자책하던 문제와 어두운 면은 더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닻이 된다. 평범한 사람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하고 속죄할 수도 없는 죄가 얼마나 있겠는가. 과실치사나 악의적으로 남을 해치는 중죄조차 무기징역이 아닌 유기징역에 처해지는데, 잘못된 결정이나 고의로 수천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은 오히려 장수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의 어두운 면과 약점, 좀처럼 다스려 내지 못하는 마음속 마와 허점은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짊어진 인류와 역사의 곤경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초일류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비로소 함께 마주할 수 있는 곤경이다. 해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신의 약점과 부족함은 바로 당신이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진실한 모습이다. 상대가 인정하고 존중하며, 마침 서로를 보완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바탕이다. 톱니바퀴의 홈처럼,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만들어 내는 무한한 동력의 원천이다. 이른바 일류와 초일류의 사람들은 사람들 가운데 운이 좋은 이들이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연대해야 한다. 큰 톱니바퀴와 작은 톱니바퀴가 모두 톱니바퀴 장치의 핵심인 것처럼, 전 세계의 톱니바퀴 장치들이여, 연대하라.
자기 자신을 방법으로 삼는 것이다. 개인의 곤경 속에는 인류의 곤경이 있다. 이를테면 아프가니스탄의 한 소녀, 미국 빈민가의 한 흑인, 베트남의 한 노동자가 그렇다. 자신의 곤경을 해결하는 것은 곧 인류의 곤경을 해결하는 일이다. 인터넷 창업에서도 자신이 곧 자기 서비스의 가장 좋은 사용자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곤경은 방향이지 막다른 길이 아니다. 인류 문명은 수학적 도출로 진보한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거듭하며 사람들이 인류의 곤경과 고통을 해결해 나감으로써 진보해 왔다.
이류는 허구의 개념이다. 초일류, 일류, 준일류, 수준 미달만 있을 뿐이다. 이류는 없다. 깨달은 자와 침륜에 빠진 자. ‘이류’도 ‘일정한 수준에 든 것’이며 취할 만한 점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과거의 내가 저지른 오류이자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다. 수많은 이류에게 잘못 이끌려 좀처럼 제대로 된 수준에 들지 못한다. 나 자신의 깨달음이 너무 낮아 준일류와 이류를 구별하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둘을 구분하는 핵심은 깨달음의 높낮이, 업장의 깊이, 진선미가 얼마나 남아 있느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