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는 동생 테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일을 멈추고 집착을 끊어야 한다
一、반 고흐의 동생 테오는 그를 북돋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관계는 객관적으로 그를 해치는 관계였다
반 고흐는 테오와 건강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했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테오가 반 고흐의 후원자이자 지지자였고, 테오는 위대하며, 반 고흐는 테오에게 빚을 졌다고 말한다. 반 고흐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반 고흐 역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도덕적 부담이 무거웠고, 쉽게 내적으로 소모되었다.
하지만 반 고흐와 테오의 관계는 한쪽만 장문의 글을 보내는 전형적인 관계이자 병적인 공생 관계였다. 테오는 반 고흐의 원가족 구원자 콤플렉스가 투영된 대상이었고, 반 고흐의 자기 반영 과제가 걸린 대상이었다(테오는 반 고흐가 자신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거울이자 쌍둥이 같은 또 다른 자기였으며, 더구나 테오는 반 고흐와 닮은 점이 그토록 많았다).
반 고흐의 고독은 연결되고, 있는 그대로 이해받기를 너무나 갈망했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대상인 고갱과 테오는 잘못된 상대였다. 그들은 업장이 너무 깊고 너무 평범해서 반 고흐를 이해하고 알아볼 능력이 없었다. 이는 그의 내적 소모와 자기 증명 욕구, 상대를 바꾸려는 콤플렉스를 심화했고, 그의 실존적 고통을 가중했다.
반 고흐는 테오를 변화시키고, 일깨우고, 교육하고, 길러 내는 데 엄청난 심력을 쏟았다. 그는 테오도 자신처럼 독립적인 민중 예술가의 길을 걷기를 바랐다(테오 자신도 그러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운명을 존중하고, 구원하려는 콤플렉스에서 멀어져라.”
이처럼 한쪽만 오랫동안 장문의 글을 보내며 상대를 바꾸고 구원하려는 관계는 대개 착취적이고 유해한 관계가 된다. 오랜 과정에서 테오는 무의식적으로 이 관계를 “유해한 방식으로 이용”했다. 반 고흐의 격려와 예술적 연결은 테오에게 정서적 만족과 실리적 자양분이 되었고, 반 고흐에 대한 부정과 의심은 자신이 변하지 않고 세속에 영합하며 “사회화”를 누리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리고 그 깊은 부정과 의심은 다시 반 고흐의 자기 증명과 붕괴, 고통을 자극했다. 이 순환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자양분을 공급하는 일은,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 상대가 나빠지고 착취하도록 부추기고 굳혀 줄 뿐이다.
이런 업장의 관계에 얽히면 판단력이 떨어지고, 내적으로 소모되며, 자신감이 부족해지고, 자기 자신과의 연결이 끊어지며, 실존적 위기와 사교의 곤경이 심해진다.
정신분석은 사람이 자신의 인격적 곤경 때문에 스스로를 빈곤에 빠뜨리는 양상을 즐겨 분석한다. 아주 흔한 장면이 있다. 사람들은 원가족과 부모(테오)에게 “충실”하려고 감히 성공하지 못한다.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실패하는 것이다.
二、많은 사람은 테오가 없었다면 반 고흐가 더 비참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틀렸다. 인간관계는 가려야 하며, 아무나 곁에 둘 바에는 없는 편이 낫다
사람들은 “나쁜 관계라도 관계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익숙하다. 하지만 유해한 관계가 사람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엄청나다. 인간관계는 가려야 한다. 우정도 지금 이 순간에, 사랑도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친구를 데리고 길을 떠나지 말고, 길 위에서 친구를 찾아라.
반 고흐는 무의식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선택을 내렸다. 민중의 편에 서고, 갱도 아래에 서기로 한 것이다. 민중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공격한 적이 없다. 그를 공격한 것은 영세·소자산계급, 부농 계급, 파리의 소자산계급이었다. 반 고흐에게는 훌륭한 사교 능력이 있었다. 민중과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좌파 지식인과 화가들 사이에서 그는 좋은 연결을 맺었다. 소박하고 자연스러우며 애쓰지 않아도 되는 연결이었다. 예를 들어 성매매 여성 시엔과 농가의 딸 호르디나는 그에게 그 순간의 좋은 동행과 힘을 주었고, 그의 예술적 진전에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영세·소자산계급의 세계와 원가족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방했다.
반 고흐는 자신의 마르크스화를 아직 완전히 마치지 못했을 뿐이다.
그가 업장에 얽혀 심력을 엉뚱한 곳에 쏟지 않았다면 더 건강했을 것이고, 더 좋은 예술적 연결과 사회적 연결을 맺었을 것이며, 더 일찍 빈곤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테오와의 협업 방식과 현금 흐름 구조가 없었다면, 반 고흐는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고 더 실전에 맞는 방식을 탐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정말 맞는 미술상을 찾았다면 반 고흐는 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고, 상황에 떠밀려서라도 자신감을 갖추고 더 넓은 세상을 보았을 것이다.
《반 고흐에게는 마르크스와 장자가 필요하다》에서는 피사로, 시냐크, 의사 가셰를 비롯해 그를 지지한 수많은 좌파 지식인과 화가들을 열거했다. 이들은 모두 그를 이해하고 북돋아 주는 사람들이었으며, 그에 걸맞은 미술품 판매망과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들과 더 많이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맥을 열어 갔어야 한다.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고, 아무나 곁에 둘 바에는 없는 편을 택하며, 얽힘에서 멀어져야 건강과 자연스러운 연결을 회복할 수 있다. 어떤 관계든 본질은 같다. 나를 북돋아 주는 사람은 가까이하고, 나를 해치는 사람은 멀리해야 한다.
루쉰의 일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이해하고 지지한 것은 평범한 민중과 좌파뿐이었다. 루쉰과 동생 저우쭤런의 관계는 전형적인 테오의 곤경이다. 두 사람도 초기에는 문예 사업의 긴밀한 동업자였다. 루쉰은 사업에서 성공했고, 몸과 마음이 건강했으며, 수입도 아주 좋아 동생을 부양했지만, 그래도 동생을 진정으로 자기 편에 모을 수는 없었다. 저우쭤런은 오히려 매국노로 전락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결국 세계관·인생관·가치관과 입장에 달려 있다. 사람은 타인을 바꿀 수 없다. 설마 자신의 인격적 매력과 말솜씨가 루쉰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三、반 고흐의 리비도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줄곧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반 고흐 자신은 사실 줄곧 각성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그는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짧은 몇 년 사이에 교회에 대한 숭배와 작별했고,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바라는 기대와 작별했으며, 미술계의 인정을 바라는 기대와 작별했다. 테오는 사실 그가 “지금” 풀어야 할 과제이자 마지막 과제였다. 반 고흐가 계속 살아 있었다면, 고갱과의 관계를 정리했듯 테오와의 관계도 정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 고흐가 후기에 여동생 빌레미나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사실 리비도가 테오와의 관계를 대신하고 보완하고 대체할 관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여동생과는 사회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테오와는 그러지 못했던 듯하다.
반 고흐는 분명히 보고 있었다. 고갱은 너무나 평범한 소자산가였고, 노라처럼 집을 나서고 크툴루를 정면으로 마주할 만큼의 용기와 힘이 없었다. 그렇다면 반 고흐가 테오 역시 평범한 소자산가라는 사실을 몰랐겠는가.
그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구원하고 일깨우고 자양분을 주려 했다. 리비도가 내부에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머리의 “이성”으로는 알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리비도는 모든 것을 안다는 말의 뜻이다. 사고는 조잡하므로, 사람은 심층의 마음과 연결되어야 한다.
실제로 고갱이 반 고흐에게 준 자극은 그의 핵심 콤플렉스를 건드렸다. 다만 고갱 한 사람의 자극만으로는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라 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지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고갱과의 관계를 정리한 것은 운명이 반 고흐에게 준 계시이자 다음 변화의 시작이었다.
테오는 바로 “노라의 감방 동료”였다(《노라의 감방 동료 증후군》: 감방 동료와의 유대도 감옥의 일부다). 테오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노라처럼 집을 나서는 과정에서 아주 어려운 과제다. 원가족의 업장이 목을 휘감은 마지막 탯줄, 그 탯줄과 질식에 작별하는 일이다.
이 과제는 너무 어렵다. 특히 1870년을 살아가는 사람, 생리적 신경 질환을 앓는 환자, 사회적 지지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반 고흐가 얼마나 앞으로 나아갔고 얼마나 강건했는지를 보면, 그의 성장과 힘을 알 수 있다. 자기 본성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지금 이 순간은 언제나 원만하다.
장자: 물거품으로 서로를 적셔 주느니,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는 편이 낫다.
四、《반 고흐에게는 마르크스와 장자가 필요하다》
나는 반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 보기를 권한다. 반 고흐는 너무나 전형적이고, 너무나 맑고 투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관계 속에 담긴 익숙한 업장, 영세·소자산계급의 업장을 모두 똑똑히 볼 수 있다. 영세·소자산계급의 절대다수에게는 친구가 없다. 친구를 사귈 인격적 토대가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왜 평생 소수의 사람들만 친구로 삼았을까? 헤스와 포이어바흐 같은 사람들이 처한 곤경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앞서 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해설 연재와 《소자산계급 사회주의 역사 연재》에서 이미 아주 분명히 설명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도 마르크스·장자 심리학의 틀을 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영세·소자산계급의 출구가 경제적 자유와 시와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남프랑스나 다리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며 고갱이 되고, 달과 6펜스를 꿈꾸고, 가장 좋기로는 모네가 되어 파리의 정원에서 수련을 그리는 것이다. 반 고흐는 과격하고 비정상적이며, 테오는 의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모두 영세·소자산계급의 이데올로기다.
영세·소자산계급의 정신세계에는 출구가 없다. 반 고흐가 죽은 뒤 테오도 죽은 것과 같다. 반 고흐는 그의 정신적 지주였다. 유일한 출구는 노라처럼 집을 나서는 것이며, 유일한 큰길은 마르크스주의다. 현시대의 판본이 바로 마르크스·장자 심리학이다.
《노라가 떠난 뒤 3: 반 고흐 증후군》:
- 테오의 곤경: 원가족의 상처와 업장, 실존적 고통, 자기의 붕괴, 심력의 고갈, 영세·소자산계급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통일전선 구축 등이 반 고흐를 테오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애쓰며 뒤틀리는 관계에 빠뜨렸다. 사람은 가려서 택할 뿐, 길러 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동업자는 더욱 그렇다.
- 계급적 사교의 곤경: 영세·소자산계급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통일전선 구축
정책과 전략은 사람의 생명이다. 영세·소자산계급을 잘못된 방식으로 자기 편에 끌어들이려 하면서 심력을 엉뚱한 곳에 쏟는다. “주변 사람들”, “업계 사람들과 전후방 거래 관계자들”, “고객”이 모두 영세·소자산계급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정신적 중심축으로 잘못 삼는다. 이들을 업무의 중심으로 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영세·소자산계급을 “민중”으로 잘못 여기고, 민중을 영세·소자산계급으로 여긴다.
앞선 글: 《인간관계의 선별: 우정은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인정을 구하지” 말고, “당신이 자신을 증명하고 진화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