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연결 시리즈

우리는 줄곧 과거의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워 왔다

사람들은 흔히 과거로 돌아가 지난날의 자신을 안아 주고 싶다고, 지난날의 자신이 안쓰럽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줄곧 과거의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고 있다.

익숙한 업장과 마음속 마귀, 오래된 적수가 계속해서 되풀이해 나타나고, 우리는 줄곧 같은 적수와 마주하고 있다. 업장과 마음속 마귀는 과거의 작은 자아를 몇 번이고 현재로 건너오게 하고, 우리는 과거의 자신이 겪었던 그 무너짐과 해리, 무력감과 비참함을 거듭 맛본다.

우리는 지금의 자신조차 이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운데, 당시의 자신은 오죽했겠느냐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당시의 자신이 비천하고 속된 존재가 아니라 용감하고 지혜로운 전사였음을 알게 된다. 그때의 내가 그토록 용감하고 지혜로웠으며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웠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내가 좋았기에 오늘의 성장이 있고, 오늘 성장했기에 그때의 내가 얼마나 좋았는지 보게 된다. 바로 이 선순환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본연의 나의 고요함과 본래의 온전함을 느끼고, 마음을 보고 본성을 밝히며, 반야와 열반에 이른다.

이 업장의 고통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여전히 고통스럽고 비참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그때의 내가 얼마나 강했는지 깨닫고, 훗날의 나 역시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강했는지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마치 깊은 물속에서 극심한 산소 부족과 고통, 자신의 작음을 느끼는 잠수부와도 같다. 동시에 그는 깊은 평온과 자신감, 강인함을 느낀다. 용감하게 심연으로 잠수해 들어가 심연을 정면으로 마주했기에, 비로소 이 한계를 느끼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고통과 비참함은 오히려 우리가 자신을 참 대단하다고 느끼게 한다. 정말 대단해, 참 잘했어 하고 토닥여 주고 싶을 만큼.

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어떤 고통과 업장, 해로운 패턴과 관계 패턴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핵심 동력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자신을 구하고 싶다는 것, 과거의 자신과 계속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고 싶다는 것이다. 버림받고 상처받는 경험을 되풀이하는 것은, 그때 버림받고 상처받은 뒤 무너져 버린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집념이 지닌 긍정적인 의미는 진지를 함락할 때까지 끊임없이 공격을 감행한다는 데 있다. 진정으로 불길에 뛰어드는 나방 같은 존재는 인간이다. 나방은 불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모르지만, 인간은 불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몇 번이고 뛰어든다.

다만 사실 우리는 그 고통을 재현할 필요가 없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고통을 되풀이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는 애초에 구원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의 자성은 원만하며, 본래의 온전함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평범하게 있을 때, 고요해지고, 좋다고 느낀다. 자신을 지옥에 던져 넣은 뒤 그곳에서 고요함을 찾을 필요는 없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평안함과 자유로움을 누리기 위해 거듭 물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것은 질식을 가지고 노는 SM 게임이다. 다만 과거의 자신이 지옥 속에서 고요함을 찾는 데 익숙했을 뿐이다.

지옥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나도 없고 집착도 없다. 욕망도 바람도 없고, 근심도 걱정도 없다.

작은 자아와 업장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은 영혼과 마음의 파편들을 끊임없이 거두어들이고, 자기가 점점 튼튼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본연의 나는 언제나 고요하고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