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장자 시리즈

충만한 마음의 힘이 부처이고, 휴식이 법이다

一、높은 마음의 힘은 부처다
마음의 힘이 높으면 자성을 볼 수 있고, 온갖 법을 낳고 온갖 마를 깨뜨릴 수 있다. 높은 마음의 힘은 업장이 적다는 결과이자 증거이며, 그러면 자성은 저절로 그러하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기에 관하여》는 마음의 철학이 내놓는 답이고, 높은 마음의 힘은 현재를 살아가기와 도의 세계로 돌아가는 길에 대한 답이다.
二、쉼은 법이다
쉼은 높은 마음의 힘에 대한 답이자 최종적인 답이다. 쉼이란 노력의 경계를 아는 것이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음을 아는 것이며, 자성의 자연스러움을 믿을 줄 아는 것이다. 매이지 않은 배이며, 유한성·자연·운명의 철학이자 《도가 철학의 핵심》이다.
《노력 강박》과 작별하고, 쉬는 것과 힘을 쓰지 않는 것, 노력 강박을 “노력해서” 치유하는 것을 유일하게 “노력해야 할” 과제로 삼으면, 쉼이 얼마나 어려운지 더욱 알게 된다. 《쉼에는 큰 지혜와 용기, 깊은 정력이 필요하다》. 높은 마음의 힘과 쉼은 드물고, 행운이며, 운명이 내려 준 선물이다.
나는 일기 쓰기와 산책이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라고 말한다. 나는 쉼을 처방으로 삼지 않는다. 사람들이 바로 그 쉼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기 쓰기는 영과 통하고 부처를 예배하는 유일한 통로다》. 일기 쓰기와 산책은 마음의 힘이 낮아지고 자기 자신과의 연결이 끊어졌을 때, 자기 자신과 연결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순간의 자신과 연결하는 방식이다. 노력 강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노력을 흉내 내기에 익숙하고 친근하면서도, 그만큼 힘들고 뒤틀리지는 않는 방식이다. 실상과 쉼으로 향하는 방식이다.
고요함으로 먼 곳에 이른다. 바르고 고요하며 밝고 비어 있어라. 빈 방에 빛이 생겨나고, 상서로움은 고요히 머무는 곳에 깃든다.
三、세계의 소외와 업장
체계는 사람들이 쉬고 높은 마음의 힘을 회복하는 것을 억누른다. 업무에서 무의미한 부분, 사람을 들볶고 소모시키는 일, 지나치게 밀집된 소모적 경쟁, 사족을 다는 일, PUA, 가스라이팅은 모두 사람의 마음의 힘을 소진시키고 그 회복을 가로막는 데 힘을 쏟는다.
노동자·농민 계급의 마음의 힘을 소진시키는 것은 피착취 계급의 혁명 역량을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기제다.
이른바 성공한 사람이나 정력이 왕성한 사람이 반드시 마음의 힘까지 높은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을 뿐이다. 테트리스를 하며 흥분하는 것과 높은 마음의 힘, 높은 알아차림은 별개의 일이다.
四、깨달음을 가로막는 낮은 마음의 힘
사람이 깨닫기 어려운 것은 《사람은 크게 이루기 전까지 오랫동안 마음의 힘도 상태도 낮은 채로 지내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하니 쉴 수 있는 큰 지혜와 용기, 깊은 정력이 부족하고, 높은 마음의 힘도 없다. 높은 마음의 힘이 없으니 또 깨달을 수 없다. 이것이 업장이 사람을 해치고 미혹으로 가로막는 지점이며, 사람의 자기 치유력을 꼼짝 못 하게 막아 버린다.
五、망령됨도 집착도 없고, 무위하며 무심하다
높은 마음의 힘과 쉼은 이토록 좋지만, “노력해서” 쉬려 하면 오히려 쉼을 방해한다. 힘을 들이는 순간 어긋나고, 의도를 품는 순간 어긋난다. 오직 무심해야 쉴 수 있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야 도에 부합할 수 있다.
들뜬 마음이 쉬는 순간, 그것이 곧 보리다. 모든 작은 자아가 쉬고, 수행자의 작은 자아가 완전히 끝나며, 더는 전혀 수행하지 않게 되는 때가 수행의 종착점이다. 이런 작은 자아들이 나타나는 것을 허용하고 알아보는 것 자체가 자성이 존재하며 작은 자아의 업장이 가벼워지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 자체로 이미 종결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대도는 순리대로 흐른다. 업장 또한 도다.
모든 집념은 업장이 가로막는 것이며, 집념이 적을수록 더욱 자유자재해진다. 자성은 줄곧 힘을 다하고 있다. 실재하는 나가 애써 무언가를 하려는 것은 모두 혼란을 보탤 뿐이다. 실재하는 나는 오직 자성의 안배에 따르고, 모든 것을 자성에 온전히 맡겨야 한다. 그래야 자성, 곧 신성이 이끄는 삶을 살 수 있다.
마음이 실제로 걸어온 자취를 보라. 지난 3개월, 세 분기, 3년 동안 경지가 나아지고 성장했는가, 아니면 평범함에 머물며 침잠했는가.
전자라면 자성이 주도하고 있다는 뜻이고, 후자라면 업장이 주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각 사람 안에서 작용하는 자성 대 업장의 기본 변증법이다. 전자라면 자성을 믿고, 자신을 믿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르라.
운명은 개인의 심지보다 훨씬 더 광대한 것이며, 심지의 유일한 역할은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다. 심지는 운명과 실사구시, 지금 이 순간에 편안히 머문다.

앞선 글 《낮은 마음의 힘 증후군》 《낮은 상태로 살아가기》 《진정한 적: 장기간의 긴장과 혼미》 《노라가 떠난 뒤 3: 반 고흐 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