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연결 시리즈

노라가 떠난 뒤 3: 반 고흐 증후군

반 고흐의 삶은 너무나 전형적이고 맑아서, 소규모·영세 자산가 계층의 노라가 집을 떠난 뒤 맞닥뜨리는 일련의 상황을 대표한다.
반 고흐를 통해 집을 떠난 노라가 인생의 다섯 요소(학업, 직업, 사교, 몸, 마음) 각각에서 마주하는 도전을 살펴본다.
《노라가 떠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용감한 노라》
一、반 고흐식 성장 환경의 곤경
태어난 가정, 처음 접한 학교, 직장, 사회에서 비롯되는 곤경.
원가족의 트라우마, CPTSD, 사랑의 결핍과 불안형 애착, 구원자 콤플렉스, 자신을 증명하려는 심리, 전통문화와 종교의 규율, 시험 풀이형 인간의 병, 사회적 시간표의 압박. 실존주의적 과제(고독, 의미, 자유와 책임, 죽음, 불안).
노라의 가출은 본래 이런 곤경에서 벗어날 길을 탐색하는 일이다.
二、반 고흐식 직업의 곤경
(一)노라-반 고흐식 비즈니스 모델
자신이 사랑하는 일, 인민을 위한 봉사,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일.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이것이 노라가 떠난 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핵심 문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는 소비력이 없으므로, 돈을 벌려면 소규모·영세 자산가의 세계와 업장을 피할 수 없다. 자신의 제품으로 어떻게 소규모·영세 자산가에게서 수입을 얻으면서 프롤레타리아에게, 인민에게 봉사할 것인가. 예술과 제품을 어떻게 ‘고상한 이와 대중’ 모두가 즐기게 할 것인가. 이것은 용감한 노라의 비즈니스 모델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으로 소규모·영세 자산가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심리학과 사회학을 연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교 관계를 선별하는 일, 통일전선의 올바른 방향을 잡는 일이 중요하다.
《탄탄 교통》은 아주 좋은 사례다. 프롤레타리아의 선진성으로 소규모·영세 자산가를 치유한다. 소규모·영세 자산가가 시청자이자 소비의 주체이며, 작품은 동시에 광범위한 프롤레타리아에게도 무료로 제공된다. 인터넷 시대의 실천 공간이다. 사실 샤오훙슈의 성공에도 이런 모델이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탄 경관, 바이트댄스, 샤오훙슈 모두 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실천하지는 못한다.
(二)반 고흐-고갱식 모순, 달 VS 6펜스, 사랑하는 일 VS 돈벌이, 쓸모없음 VS 쓸모 있음.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오랫동안 돈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뿐 아니라 에너지도 많이 소모하고, 대타자 크툴루와 싸워야 해서 일상적인 생업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조차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노라의 가출과 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이 다뤄야 할 핵심 과제다.
(三)빈곤: 자원이 바닥나고 다음 공급은 아직 오지 않는 시기
사교, 돈, 자원, 마음의 힘 등등. 고비 사막의 밤길을 걷는 동안, 가진 것은 자신의 의지뿐이다.
생존 임계선: 소규모·영세 자산가가 회피하고 감히 직시하지 못하는 과제
물질과 정신 양쪽의 생존 임계선, 돈과 마음의 힘의 파산, 사교의 파산.
정신의 생존 임계선: 끊임없이 심해지는 속물성, 《35세에 정신적 죽음, 55세에 사회적 죽음》.
소규모·영세 자산가는 회피하고 감히 직시하지 못한다. 한 번 보고는 겁에 질려, 내달리고, 투항하고, 의탁한다. 크툴루 효과다.
노라가 집을 떠나고, 사막과 고비의 밤길을 걷는 것은 바로 정신의 생존 임계선에 이르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기에 물질의 생존 임계선과 정신적 고독을 기꺼이 마주한다.
반 고흐는 줄곧 생존 임계선과 공존하며, 그 선 아래에서 평온한 그림을 그렸다. 전장의 노란 국화. 이것이 바로 《용감한 노라》다.
마르크스 자신도 생존 임계선과 공존했다. 《1863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첫 다툼과 불화》
三、반 고흐식 사교의 곤경
(一)소규모·영세 자산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통일전선
정책과 전략은 사람의 생명이다. 잘못된 방식으로 소규모·영세 자산가와 통일전선을 이루려다 마음의 힘을 엉뚱한 곳에 쏟는다. ‘주변 사람들’, ‘업계 사람들과 거래 관계자들’, ‘고객’이 모두 소규모·영세 자산가라는 이유로, 이들을 정신적 중심축으로 삼는 오류를 범한다. 이들을 업무의 중심에 두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소규모·영세 자산가를 ‘인민’으로, 인민을 소규모·영세 자산가로 잘못 여긴다.
소규모·영세 자산가와의 통일전선은 말이나 설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자와 총구가 선을 긋는 데 달려 있다. 소규모·영세 자산가에게는 친구가 없다. 시비와 선악, 적과 동지를 가리지 않고, 그저 강자에게 의탁하고 자유로부터 도피한다. 이기는 쪽을 따른다. 만주족 청나라의 팔기가 오면 청나라에, 일본인이 오면 일본인에게, 이자성이 오면 이자성에게, 볼셰비키가 오면 볼셰비키에게 의탁한다. 즈후에서 유명인을 추켜세우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알아서 논리를 대며 변호해 줄 대유학자가 있기 마련이다.
지식인은 소규모·영세 자산가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중국 고대 왕조가 유가와 지식인을 대했던 전략에도 비슷한 이치가 있다. 선비족은 적극적으로 한화하고 지식인을 숭상했고, 원나라는 지식인을 중시하지 않았으며, 송나라는 지나치게 후대했고, 청나라는 한편으로 학살과 삭발을 강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통일전선을 폈다. 한 선제 유순은 유학을 숭상하는 태자를 비판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한나라에는 본래 고유의 제도가 있으며, 원래 패도와 왕도를 섞어 쓰는 것을 근본으로 삼았다. 어찌 오로지 덕에 의한 교화에만 의지하려 하느냐.”
반 고흐는 잠재의식 속에서 일찌감치 선택을 내렸다. 인민의 편에, 갱도 아래에 섰다. 인민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속에서 그는 좋은 연결을 맺었다. 인민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공격한 적이 없다. 그를 공격한 것은 소규모·영세 자산가 계급, 부농 계급, 파리의 소시민 계급이었다. 반 고흐에게는 훌륭한 사교 능력이 있었다. 좌파 지식인과 화가들 사이에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소박하고 자연스러우며 애쓸 필요 없는 연결을 맺었다. 예를 들어 성매매 여성 시엔 모녀, 농가의 딸 호르디나는 그에게 현재를 함께하는 좋은 동반과 힘을 주었고, 그의 예술적 발전도 도왔다. 하지만 소규모·영세 자산가의 세계와 원가족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방했다.
반 고흐는 다만 자신의 마르크스화를 아직 완전히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
(二)테오의 곤경
성장기의 트라우마와 업장, 실존주의적 고통, 자기의 붕괴, 마음의 힘의 과도한 소진, 소규모·영세 자산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통일전선 등이 반 고흐를 테오와의 통일전선에 매달리며 억지로 힘을 쓰는 뒤틀린 관계에 빠뜨렸다.
선별만 하고, 길러내려 하지 않는다. 특히 동업자를 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반 고흐는 평범한 사람들, 좌파 지식인 화가들과 훌륭하고 애쓸 필요 없는 연결을 맺었다.
루쉰도 평생 그러했다. 오직 평범한 사람들과 좌파만이 그를 이해하고 지지했다. 루쉰과 동생 저우쭤런의 관계는 전형적인 테오의 곤경이다. 두 사람 역시 초기에는 문예 활동의 긴밀한 동업자였다. 루쉰은 자신의 일에서 성공했고, 몸과 마음이 건강했으며, 수입도 아주 좋아 동생을 부양했다. 그런데도 동생과 진정한 통일전선을 이룰 수 없었고, 저우쭤런은 오히려 한간으로 전락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결국 세계관·인생관·가치관과 입장에 달려 있다. 사람은 남을 바꿀 수 없다. 설마 자신의 인격적 매력이나 말솜씨가 루쉰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앞선 글: 《반 고흐는 동생 테오와의 통일전선을 그만두어야 한다》, 《아무나 받아들이느니 없는 편이 옳다》, 《인생의 마지막 짧은 글》
(三)용감한 노라의 경계선, 깨어난 자의 경계선.
소박함의 층위와 소시민적 인본주의의 층위 사이에는 분명 깊은 골을 이룬 경계선이 있다. 하나는 위로 진화하고, 하나는 아래로 침잠한다.
용감한 노라의 경계선, 깨어난 자의 경계선.
사교와 조직은 이를 기준으로 나누어야 한다.
三、반 고흐식 마음의 곤경
(一)일과 휴식의 조화라는 곤경, 마음의 힘 저하 증후군
일과 휴식을 조화시키기는 어렵다. 《휴식에는 큰 지혜와 용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에 앞서 ‘일상’부터 자기 괴롭힘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자기 공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원래 순전히 업장에서 비롯된 자기 공격 안에, 가혹한 자기 감시자 자체에 대한 저항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리비도의 내분이다. 이른바 ‘미루기’로 인한 내적 소모가 바로 이런 내분의 상황이다. 그런데 반 고흐처럼 올바른 길을 걷고, 해야 할 일과 몰입이 너무나 ‘쉽게’ 생기는 사람은 미루기를 폄하하고 ‘행동’을 숭상하기가 더욱 쉽다. ‘행동’을 ‘휴식’으로 여기거나, 상태가 좋고 에너지가 높을 때의 ‘휴식’에 집착하며, 마음의 힘과 건강한 연결을 맺지 못한다.
《마음의 힘 저하 증후군》: 마음의 힘이 방전되고 낮아져서 쉴 힘조차 부족하다. 제대로 쉬지 못하니 마음의 힘이 회복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과도하게 소진한다.
마음의 힘이 바닥나고 회복은 아직 오지 않는 시기는 돈이 바닥나고 다음 수입이 아직 오지 않는 시기보다 견디기 어렵다.
《충만한 마음의 힘이 부처이고, 휴식이 법이다》
(二)반 고흐식 실존주의적 위기
실존주의적 위기는 주로 불안, 고독, 무의미, 자유와 책임, 죽음이다.
용감한 노라에게 무의미라는 과제는 분명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라의 가출과 반 고흐의 혁명은 모두 바로 사무직 노동과 미술품 거래상의 소외, 무의미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 고흐는 자연히 자신의 예술과 인생의 의미를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안과 죽음에 대한 불안도 문제가 아니다. 반 고흐는 놀라울 만큼 침착하고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반 고흐의 주요 실존주의적 과제는 두 가지다.
1.고독
주로 성장 환경에서 비롯된 업장, 구원자 콤플렉스, 테오와의 통일전선에 얽매였으며, 이와 관련된 소규모·영세 자산가와의 사교 및 통일전선의 업장에도 얽매였다. 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반 고흐에게는 마르크스와 장자가 필요하다》. 더 일찍 인민,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연결되었어야 했다. 실제로 반 고흐는 이미 평범한 사람들, 프랑스 대혁명, 졸라 등과 연결되어 있었다. 피사로와 시냐크 등을 통해 진정한 좌파 집단과 연결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다. 반 고흐가 3~5년만 더 살았다면, 이 과제에서 반드시 질적인 돌파를 이루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시대의 곤경이기도 하다. 당시 세계혁명은 침체기에 놓여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두 사람도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 앞에서 상당히 무력했다.
2.자유와 책임
반 고흐는 초기부터 형성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시험 풀이형 인간의 정신, 가혹한 초자아 등에 얽매여 심하게 자신을 의심하고 채찍질했다. 이는 그의 사교와 테오와의 얽힘에도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지나치게 힘을 쏟고 쉬지 못해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소진하며, 마음의 힘이 천식처럼 숨 가빠졌다. 《노력 강박》
그러므로 반 고흐에게는 도가와 장자의 철학이 필요했다. 무능과 무위를 알고, 자신의 책임과 능력의 경계를 알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했다. 반 고흐가 3~5년만 더 살았다면, 반드시 자신을 사랑하는 쪽으로, 일과 휴식을 조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반 고흐는 예술의 도를 크게 이루었으나, 인생 전반에서 큰 완성을 이루기 직전에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안타깝다. 오아시스 바깥에서 죽은 노라다.
이것은 좌파와 마르크스주의 애호가들이 흔히 마주하는 도전이기도 하다.
(三)반 고흐식 리비도의 긴장
깊이 쌓인 기초와 예술성, 엄청난 정신적·물질적 보답의 가능성과 결핍된 현재 사이의 긴장. 대도의 경지에 이른 대가라는 사실과 가난하고 궁색한 처지 사이의 긴장. 조용히 기다린다.
열등감-자신감의 진동:
흔히 볼 수 있는 열등감-자만-자기혐오가 아니라, 열등감-자신감의 진동이다. 건강한 자신감과 감당하기 어려운 열등감이 상태와 처지에 따라 오르내린다.
희망-절망의 진동
붕괴-평온의 진동:
앞서 나는 극도로 고통스러웠고, 괴로웠고, 갈피를 잡지 못했고, 혼미했고, 미쳐 있었다. 하지만 나는 회복했다. 지금 나는 아주 평온하다. 평온하게 일하고, 도와 함께한다.
세이렌의 순간:
크툴루의 요괴가 노래하고 있다. 실존주의적 위기로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이미 자신과의 연결이 끊겨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믿을 수 없다. 이른바 주변 사람들은 더욱 믿을 도리가 없다. 오직 도와 메타인지만 믿을 수 있다. 나를 돛대에 묶어 다오. 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돛대이며, 유일한 영적 소통 방법이다.
광기:
때로는 내가 미친 것인지, 세상이 미친 것인지 모르겠다. 루쉰의 《광인일기》
四、반 고흐의 정신
현재를 살아가기.
무너져 가면서도, 평온하게.
절망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걸음마다 원만하다. 반 고흐는 어느 해, 어느 순간에 원만해졌는가?
강건함
진정으로 이 길에 들어서야 반 고흐가 얼마나 끈질기고 강인하며 건강했는지 알게 된다(반 고흐 자신도 편지에서 자신의 강건한 체질 덕을 보았다고 썼다). 반 고흐가 나약하고 미친 듯 보이는 것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이 거센 비바람 속에 들어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덧붙임:
《노라의 가출 4: 노라를 위해 노래하라, 세이렌》:
세이렌, 아름다운 요괴여, 목청껏 노래하라. 나는 길을 잃지 않을 테니, 나를 돛대에 묶을 필요가 없다. 이제 내가 바로 돛대다. 사람들은 길을 잃지 않으려고 내 몸에 자신을 묶는다. 오직 나만이 눈을 뜨고 세이렌의 아름다움과 해협의 장엄함을 즐길 수 있다. 세이렌, 나를 위해 노래하라. 나도 너와 함께 목청껏 노래하리라.
용감한 노라여, 목청껏 노래하라. 고비 사막의 밤길을 걷고, 한밤중에 바다로 들어가고, 한창나이에 큰 파도를 맞는다. 보름달은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가. 하늘과 땅은 얼마나 넓은가. 인간 세상은 얼마나 생생한가. 나의 원자 형제들과 나의 심장은 영원히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신진대사가 이루어지고 별자리가 옮겨 가며, 우주는 영원히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나는 이미 마르크스와 장자의 사상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의 본래의 온전함, 천인합일, 자연의 흐름을 따름과 연결되었다. 동녘은 곧 밝아지고, 아침 해가 떠오르리라. 저편 지평선에서. 생존 임계선은 소규모·영세 자산가를 겁주는 데 남겨 두자. 그들이 자신들의 사악한 신, 대타자 크툴루와 서로를 만들어 내도록 두자. 죽음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것이 아니다.
도는 바로 발밑에 있다. 발을 단단히 딛고 선 사람은 마음도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