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을 경외하라
업장을 경외하라. 업장은 너와 나의 자성을 가릴 수 있고, 수많은 국가와 민족을 가릴 수 있으니, 어찌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유물론의 관점에서 보는 업장의 객관적 존재
마르크스와 장자는 역사유물론과 도의 관점에서 업장을 바라본다. 안팎의 업장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사유제, 소시민적 업장, 엘리트 사회진화론, 봉건성, 집단 무의식, 대타자, 가문의 업력 대물림 등이 그 예다.
이는 본심으로 그것들을 쉽게 없앨 수 있을 듯이, 업장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마음의 노력과 수행이 부족하기 때문인 듯이 암시하는 관념론과는 다르다.
개인의 문제는 모두 사회의 문제이며, 개인의 업장은 모두 사회의 업장임을 보라. 그러면 자신을 더 잘 돌보고,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잘 돌볼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이를 역사적 한계, 계급적 한계, 개인적 한계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질, 곧 자성의 광명과 업장의 총합은 사회적 관계의 총합이다.
계급 분석 자체가 업장 분석의 일부다. 프롤레타리아와 밑바닥에서 일하는 노동 인민은 내면의 업장이 가볍고, 내적 소외의 정도가 얕다. 수십억 인구의 소박한 진선미가 그 확고한 증거다.
소시민과 중상층이 발언권을 장악했기에, 엘리트주의, 사회진화론, 휘그 사관 같은 업장의 서사가 ‘주류’가 된다.
제왕은 역사의 노예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장자·제물론》: “옛사람들의 앎은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 어디에 이르렀는가? 애초에 사물이 존재한 적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었으니, 지극하고 극진하여 더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다음은 사물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고, 그다음은 구분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며, 그다음은 시비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시비가 드러나는 것은 도가 이지러지는 까닭이다.”
《장자·대종사》: 안회는 인의를 잊고, 예악을 잊고, 좌망에 이르렀다. 좌망이란 무엇인가? 팔다리와 몸을 잊고, 감각과 총명을 물리치며, 형체를 떠나 앎을 버리고, 크게 통하는 도와 하나가 되는 것, 이를 좌망이라 한다.
이、업장을 경외하는 것은 자성의 광명을 경외하는 일이기도 하다
업장을 경외하면서 우리의 자성을 존중하고 고마워하기도 한다. 우리의 자성은 줄곧 운명의 수렁 속에서 이토록 힘겨운 싸움을 벌여 왔다. 그러면 과거의 자신에게 고마워하고 그 자신과 연결되기 쉬워지며, 미래의 자신 또한 지금의 우리를 다정하고 고마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며 연결될 수 있다.
소박하고 선량한 평범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성의 광명 또한 존중하고 고마워한다.
타인의 업장을 경외하고, 타인의 운명을 존중하며, 업장의 각본 속에 있는 타인의 자성의 광명을 존중하고, 타인이 자기 운명의 각본 속에서 영웅의 여정을 걸어 나갈 가능성을 존중한다. 타인의 자성의 광명도, 타인의 업장도 과소평가하지 말라. 타인의 운명에, 타인의 업장에 휘말리지 말라. 우리는 자기 업장조차 감당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타인의 업장은 어떻겠는가?
아이를 구하겠다는 생각을 쉽게 품지 말라. 아이에게는 본래의 온전함이 있으며, 오히려 어른을 구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업장은 아이가 타고난 원기로도 감당할 수 없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아이든 그 누구든 그 사람의 동맹일 수 있을 뿐, 스승일 수는 없다.
업장과 자성을 경외하는 것은 누구인가?
삼、업장을 경외하는 것은 업장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업장을 보고 자성의 광명을 믿으면 아집이 한결 가벼워진다.
사람들은 흔히 업장을 두려워하고 피하며, 어두운 면을 피하고, 실상을 피한다. 업장을 정면으로 마주할 능력이 없다.
업장을 경외하면 자신의 어두운 면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 때문에 나를 피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나의 본질은 자성의 광명이다.
업장을 경외하면 수행과 청정함을 통제하려는 집념을 더 쉽게 내려놓을 수 있다. 우리의 자성의 광명조차 감당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우리의 사고는 어떻겠는가?
삶은 용암과 같다. 시커먼 업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로 가릴 수 없는 뜨거운 자성의 광명이 반짝인다.
삶은 연꽃과 같다. 진흙과 더러운 물도 있고, 푸른 잎과 흰 연꽃도 있다. 그리고 그 꽃이 바로 우리의 원만한 자성의 광명이다.
언제나 원만했고, 걸음마다 원만하다.
사、업장을 경외하면 인간관계에서 가려서 만날 뿐, 바꾸려 하지 않는다
타인이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타인의 자성의 광명을 과소평가하고, 타인의 업장을 과소평가하며,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우리 자신의 업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업장을 경외하면 우리가 많은 사람을 밀어내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인간 본성의 선함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업장과 대타자가 우리로 하여금 밀어내게 하는 것이다.
업장을 경외하면 타인이 우리를 밀어내고, 피하고, 멀리하는 것을 두고 더는 마음을 졸이거나 분석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는 분명 자신을 괴롭게 하고 타인도 괴롭게 하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크툴루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우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다.
사람들은 자성에 이끌려 서로 끌리기도 하고, 업장으로 얽히기도 하며, 또 업장 때문에 서로 밀어내기도 한다. 밀어내는 편이 얽히는 것보다 낫다. 멀리하는 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연이 없어서이며, 각자 업장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멀리하는 것이야말로 귀한 선의다. 얽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얽힘을 친밀함과 뜨거운 사랑으로 여기는 것은 업장이다.
오、업장을 경외하면 현재를 살아가기에 더 가까워진다
우리는 현재의 업장조차 뚜렷이 보기 어려운데, 하물며 업장에 가려지고 교란된 과거와 미래는 어떻겠는가.
우리가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는 것은 업장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업장을 경외하면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도 더 잘 허용할 수 있다. 지금 연결이 끊기고 무너지는 것을 허용하라.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연결이 끊겼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자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업장을 경외하면 현재에 더 편안히 머물며 즐길 수 있다. 이 한 줄기 바람을 소중히 여기면 마음은 바람을 타고 떨리고, 저 한 송이 구름을 소중히 여기면 생각은 구름을 타고 자유로이 내달린다.
지금의 그 연결들을 소중히 여기라. 그것들은 이미 우리의 자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낸 모든 연결이며, 업장이라는 먹구름 속에서 찾아낸 모든 틈새로 내보낸 빛이다.
육、업장을 경외하면 더 실사구시할 수 있다
실사구시하지 않는 것 자체가 업장이다.
자신에 대해 실사구시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며, 모든 고통을 허용하라.
실사구시하며, 가려서 만나고 연결할 뿐, 바꾸려 하거나 얽매이지 않는다. 이는 업장이 비교적 가벼운 모습이다.
역사에 대해 실사구시하고, 역사를 경외하라. 역사는 대도가 운행하며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개인은 미미하며, 모두 흐름을 따라 뜨고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