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장자의 심리학 마르크스 + 장자 철학 · 누구나 본래 온전하다

마르크스 시리즈

심리학을 이끄는 마르크스주의의 역할

마르크스주의가 심리학에 주는 지침

심리치료와 수행에 관한 내 생각은 심리학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심리학에 미치는 역할에 관해 글을 써 보려 했지만, 주제가 너무 크고 서두를 일도 아니어서 줄곧 쓰지 못했다. 이 글은 대략적인 개요다.
일、심리학의 범주
1.인지행동치료의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을 이끄는 마르크스주의
인지행동치료는 사람의 인지, 기본 신념,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을 바꾸어 단기간에 행동 양식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이어 선순환을 이루어 신속하게 효과를 내는 것을 강조한다. 단기치료의 주요 수단이다.
보통 사람들은 엘리트주의, 사회진화론, 능력주의, 소비주의를 비롯해 공정한 세상 가설, 노력 결정론 등 수많은 소시민적 세계관의 해악에 깊이 물들어 있다.
가장 흔히 접하는 반소비주의 글이 널리 퍼지면서 좋은 효과를 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샤오훙수에서 흔히 보이는 각종 비판적 인식의 전환, 특히 여성의 성장에 관한 내용은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위챗 모멘트에 자주 도는 독일식 사회학 비판도 흔히 이 범주에 속한다. 체제에 순응하는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을 이야기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이런 중요하지 않은 의제에서 가려운 곳만 긁는다.
“노력 결정론”은 더 어려운 과제다. 내가 마르크스주의와 장자에 귀의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도가가 “노력”을 훌륭하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역사유물론과 도가의 복잡성과 유한성에 대한 인식은 모두 노력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을 깨뜨린다.
우에노 지즈코를 마르크스주의식 인지 변화를 통한 행동치료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의 저서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있지만, 본인이 마르크스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지침이 없다면 많은 “여성 성장 코치”가 말하듯 “여성 여러분, 열심히 돈을 버세요. 돈이야말로 여성의 독립을 돕는 핵심입니다”라는 식이 된다. 이는 한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다른 구덩이에 빠지는 일이며, 여전히 노라가 집을 나간 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앞선 글 「개인의 문제는 흔히 사회와 인류의 문제다」, 「노력에 관한 특별 토론」, 「사람은 운이 좋고 잘나갈 때만 사회진화론자, 엘리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2.마르크스주의가 정신분석에 주는 지침
신정신분석은 이후의 자기심리학, 애착관계 등을 포함하여 인간의 다양한 심층 심리, 방어, 작동 기제를 연구한다. 특히 외부의 관계 환경 속에서 이를 연구한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의 본질은 모든 사회관계의 총체다”와 통한다. 여기에는 가족, 직장,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권력, 위계, 통제, 자본화의 관계가 포함된다.
정신분석은 사람이 어떻게 건강하지 않은 심리 양식과 방어에서 벗어나 자기의 성장과 자아실현을 이루는지 연구한다. 하지만 사회 환경은 이 문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제약을 가한다. 호나이의 명저 『우리 시대의 신경증적 성격』은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룬다. 그래서 호나이는 프롬 등과 함께 “사회문화학파”로 불린다. 즉, 개인이 병든 것이 아니라 사회가 병들었다는 것이다.
별도의 글 「대학생의 기본 모순」
3.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
내가 말하는 실존주의는 어빈 얄롬이 제시한 실존주의의 네 가지 요소, 즉 고독, 무의미, 자유와 책임, 죽음을 가리킨다. (나는 평소 여기에 “불안”이라는 요소를 하나 더해 다섯 가지 요소라고 부른다.)
이 의제들이 마르크스주의 및 사회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대학생이 방황할 때 흔히 나타나는 한 가지 상황: 실존적 위기」
4.상담사 본인의 세계관·인생관·가치관, 시야, 사회 경험을 넓히는 마르크스주의
상담사는 흔히 소시민 계급 출신이며, 그들의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은 소시민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는다. 1. 프롤레타리아와 하층민을 내려다보며, 낯설어하고 배척하고 두려워한다. 2. 원가족 문제를 많이 접하는 것 역시 현 단위 지역이나 하층민 등의 문제를 배척하고 두려워하게 한다. 3. “노력”, “정상적인 사회적 기능” 등에 대한 정의가 지나치게 소시민적이다.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싼허의 일용직 청년은 많은 상담사의 눈에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그 청년은 자기 방식으로 존재하고 생존하고 저항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지행동 계열의 심리상담사는 자신도 모르게 사회적 훈육과 사회의 “당위”, “정상적인 사회적 기능”을 잣대로 삼아 “당위의 폭정”을 강화할 수 있다.
상담사도 내담자도 진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 상담사가 정치, 경제 등 각종 의제에 매우 낯설다면 내담자의 여러 말과 행동, 말하지 않은 뜻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예컨대 프롬의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나치, 즉 독일인 전체가 극우로 광분했던 문제를 연구한 책이다.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우경화와 트럼프를 비롯한 우익의 집권을 볼 수 있다. 상담사가 마르크스주의에 기대지 않는다면 이런 우익의 광신과 공격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프롬은 과도한 경쟁과 압박이 가득한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을 몹시 비천하고 하찮게 느끼며, “자유와 책임”을 회피하고 거대한 것들을 숭배하며 굴복하는 일을 논했다.
예전에 한 어머니가 내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 고등학생인 아이가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에 열중하는데 성적이 별로 좋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나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이것이 현실의 문제다. 상담사는 이런 문제와 고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비리비리와 즈후에 있는 수많은 열성적인 인터넷 좌파 청년들을 상담사는 어떻게 이해하며, 수많은 열성적인 소분홍, 즉 중국의 청년 민족주의자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나치와 같은 극우 극단주의로 이해한다면, 이는 소시민에게 흔한 이해 방식인데, 필연적으로 큰 문제가 생긴다.
정신의 산파인 상담사 본인에게 넓고 깊은 시야와 소양이 없고, 흔히 접하는 각종 사회과학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다면 내담자가 출산할 때 겪는 여러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그저 분만 겸자로 억지로 잡아당길 줄만 아는 셈이다. (샤오훙수 @Anna: 이런 상담사는 내담자의 자아가 “뱃속에서 죽는” 것을 방치한 뒤, 그 대신 인형 하나를 찾아 주고 아이가 태어났다고 선언할 것이다. 모든 내담자가 진정한 자아/자기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내담자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진실을 회피하며, 또 다른 내담자들은 아직 과제와 진실을 마주할 힘이 없다. 어쨌든 상담사가 내담자의 과제 회피를 도운 셈이다. 이는 점술가와 점을 보러 온 사람이 모두, 이것이 어떤 문제들은 건드리지 않은 채 적당히 얼버무리고 위로하는 일임을 아는 것과 같다.
앞선 글: 「중국 인민과 중국 네티즌은 서로 다른 집단이자 계급이다」
5.프롤레타리아 계급 자체가 지닌 치유성
소시민 계급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두려워하고 배척하며, 찌질이와 실패자로 낙인찍는다. 하지만 소시민은 자신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일부이며 자본의 억압을 받는 이들의 일부임을 깨달아야만 건강한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 또 재래시장을 자주 돌아다니며 평범한 서민들, 아주머니들과 짐꾼들을 만나 보면 이들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날마다 사기 치고 남을 잡아먹고 돈을 뜯어낼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고되게 노동하고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소박하고 따뜻하며, 소박한 진선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또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첫째, 본래의 온전함이다. 반드시 엘리트여야만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덜어 내기다. 평생 가난하게 살고 계층 상승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목표를 덜어 내면 된다.
『탄탄교통』에 나오는 수많은 하층민의 이야기가 소시민들에게 주는 치유가 대표적이다. 반 고흐가 광부와 농민을 그렸던 것과 같다. “그들은 자기 두 손으로 일해 얻은 감자를 먹고 있다.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2023.11부터 지금(2015.1)까지 나는 윈난의 현 소재지에 머물며 윈난 사람들의 소박함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는 치유를 깊이 느끼고 있다.
「하층 노동계급의 소박한 진선미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답변: 드러눕기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며, 인생의 방향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마르크스, 장자, 심리학: 아래로부터의 마르크스주의」
6.소시민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관찰과 이해
마르크스주의에는 소시민의 나약함, 동요성, 의존성, 공허함, 우월감에 관한 역사적 기록과 깊이 있는 분석이 있다. 예컨대 마오룬즈의 「중국 사회 각 계급의 분석」은 소시민을 훌륭하게 분석한다. 마르크스의 프랑스 3부작은 더욱 고전적인 실제 계급투쟁 분석이다.
7.노동, 진로 계획과 심리적 치유
노동과 심리학은 경영학의 기본 과제다. 초기의 사람을 소나 말처럼 부리던 테일러주의에서 “사람은 사람이다”라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한 호손 실험을 거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드러커, 프롬, 매슬로 등이 시작한 인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경제 주기, 세계사, 산업 고도화, 세계혁명, 사회과학의 진보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노동조합에 결연히 반대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콘드라티예프 파동의 하강기, 소련의 쇠퇴, 좌익의 쇠퇴, 신자유주의의 기승과 관련이 있다.
노동은 사람을 자라게 하는가, 아니면 괴롭히는가? 이것은 근본적인 의제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가 “공산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인간의 “욕구”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노동이 어떻게 인간의 욕구일 수 있단 말인가? 일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욕구 아닌가?
샤오훙수를 보면 갓 대학을 졸업한 22~28세 청년들이 원래의 환경, 즉 원가족, 학교, 문화에서 벗어나기 시작해 “진짜” 사회를 접하면서 자기감, 자신감, 자기효능감이 커지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노동이 사람을 자라게 하는 측면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25~35세의 “회사 노예” 시기에는 또 직장 일에 시달려 숨조차 쉬기 어렵다.
심리상담이 이런 기본적인 삶의 과정조차 잘 모른다면 어떻게 내담자를 도울 수 있겠는가?
8.한 나라만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듯, 한 사람만으로 수행하여 부처나 신선이 될 수 없다
레닌은 한 나라만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떤 나라도 세계무역과 세계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국가 역시 사회관계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닫아걸고 국내 순환만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깊은 산속에서 수행하여 부처나 신선이 될 수 있을까? 그가 먹고사는 것은 현대 농업이 값싸게 공급하는 탄수화물에 의존하며, 병이 나면 현대 공업이 만든 아스피린과 아세트아미노펜을 먹어야 한다. 혼자 약초를 캐는 데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다. 그의 안전은 현대 중국의 국방과 공공안전에 의존한다. 또한 그는 수십억 명의 고통을 외면할 수도 없다. 자신이 사회와 현대 산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음이자 회피다.
왜 “인간은 사회관계의 총체”인가? 생산력의 수준이 인간의 “삶의 본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소시민은 언제나 “경제적 자유”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환상을 품지만, 어느 날 문득 사들여 둔 상가가 가치 없어지고, 사들여 둔 집값이 폭락하고, 쌓아 둔 화폐의 가치가 떨어졌음을 발견한다. 이것이 바로 1930년대 독일인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져 히틀러를 끌어안은 이유다. 게다가 소시민이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면 자본주의의 거대한 순환 속 착취 과정에 참여하기 마련이다. 곧 루쉰이 「광인일기」에서 말한 “사람을 잡아먹는 문제”다. 어쩌면 아직 사람을 잡아먹지 않은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구하라.
예컨대 포크 가수나 오디션 출신 가수, 더우인 라이브 방송 가수가 “무해하고 계급성이 없는” 노래 한 곡으로 인기를 얻어 수백만, 수천만을 벌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고 해 보자. 그는 자신이 사회에 해를 끼치거나 사회를 착취하지 않았으며, 사회 역시 자신에게 빚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사회 및 사회문제와의 관계를 끊은 것이 아니다.
이、심리학의 범주를 벗어나 이야기하기
1.많은 문제는 애초에 심리 문제도, 정신분석의 문제도 아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와 여성주의자들의 분노와 공격성은 건강하지 못한 병리적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의 정상적인 반응이다.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분노는 건강하다”는 정신분석의 기본 원칙 중 하나다. 정신분석이 연구하는 것은 분노가 표현되지 못한 뒤의 “억압”, “수동적 공격”이다. 이를테면 전업주부가 겉으로는 정상적이지만 속으로는 원망을 품은 채 하는 행동이다.
많은 “우울”은 건강하지 못하고, 이유도 없으며, 깊이 분석해야 하는 우울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이 명백한 이유로 기력이 소진된 것이다. 쉬어야 하지만 996 근무제, 즉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체제에서는 쉴 수 없다. 그저 이렇게 단순하다.
쑨원과 루쉰이 의학을 버리고 글과 혁명에 나선 것은 “의학을 배워서는 중국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쿠바의 공공의료 체계 역시 의대생들이 베푼 선물이 아니라 혁명이 가져온 것이다.
이는 사실 역사유물론의 범주에 속한다. 세계의 진보는 엘리트와 지식인의 선전, 교육, 선동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혁명과 생산력 발전에 달려 있다. 뜻을 품은 많은 상담사와 지식인은 여전히 엘리트의 노력과 좋은 인식에 기대를 걸며, 개인 미디어로 대중을 일깨우고 구하려 한다. 이것이 관념론과 유물론의 입장 사이에 놓인 기본적인 차이다.
중국 농민의 심리 문제는 심리상담사가 완화한 것인가? 그것은 태평천국 봉기, 추수봉기, 토지혁명에 힘입었으며, 화학비료, 우량 종자, 농기계, 수리시설, 경공업과 중공업에 힘입었다.
(샤오훙수 @Anna: 용기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것 역시 심리치료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실존주의 치료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아직 용기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심지어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인격적 토대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많은 심리치료는 흔히 강한 사람이 돌파하기 직전에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도록 하는 학문이다. 취약한 자기,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이것은 제대로 된 심리학 대중 지식이 마음을 달래는 이야기만큼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영양실조로 허약해져 있어 우선 닭고기 수프나 쌀죽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보편적인 영양실조는 오히려 심리치료로 도울 수 없다. 오직 사회혁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어느 친구: 지주는 집에서 심리상담이라는 마사지를 받는다. 농민은 먼저 지주 집의 곡식 창고를 부수고, 사람들에게 죽을 나누어 주고 땅을 분배해야 한다. 배불리 먹고 일어선 뒤에 이야기하자.)
2.개인의 문제를 사회화하기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사회적 억압의 한 형태이며, 패배자/찌질이를 모욕하는 문화다.
이에 맞서 마르크스주의는 개인의 문제를 사회화하여 개인의 압박과 자책을 덜어 주고, 개인과 세계 사이의 단절, 사회와의 대립과 사회에 대한 원망을 줄인다. 또한 개인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사이의 연결감을 높이고, “건강한 공동체”, 즉 인류 운명 공동체인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와의 깊은 연결을 강화한다. 소시민은 “하층민”을 심하게 낙인찍는데, “가난하고 험한 곳에서 고약한 백성이 나온다”는 말이 그 예다.
사회와 사회문제의 신비화를 걷어 내고 사회와 상부구조의 신비로운 장막을 벗겨, 거대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 위축감을 줄인다.
앞선 글 「개인의 문제는 흔히 사회와 인류의 문제다」
3.현대 심리학의 “소시민화”
상담사, 내담자, 학계는 대체로 소시민 계급, 특히 지식인 계층 출신이다. 상담을 받을 의식이 있고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며 적격한 상담사를 찾을 수 있는 내담자는 분명 대도시의 소규모 자산 보유층이 주를 이룬다.
사회학에는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많은 사회학 현상은 사실 아이비리그 명문대 2학년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른바 “실험”에 참여하는 자원자가 모두 그런 2학년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흥미로운 현상도 있다. 심리학, 특히 정신분석은 “풍요의 병”, 즉 “좋은 형편을 누리며 살면 될 것을 스스로 일을 만드는” 문제를 연구하기 좋아한다. 예컨대 어떤 여성은 남자친구도, 일과 생활도 다 괜찮은데 자신은 영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열심히 심층 분석을 해 보면 어린 시절의 어떤 트라우마나 어떤 유전자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런 “풍요의 병”은 현재의 생활 과제와 인간관계 과제를 배제하고 “심층 문제”, “초기 문제”, “유전자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학술적 성과”를 내기 더 쉽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이 마주하는 것은 풍요의 병도, 어린 시절의 병도 아니다. 바로 지금의 문제, 삶이 몹시 어렵다는 문제다.
4.70억 명이 어렵게 생존하는 상황에서 10:1의 비율로 적격한 심리상담사 7억 명을 배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리상담에 기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서구의 경영학자와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유사이키아 공동체”, “유사이키아 경영”을 제시했다. 집단과 건강한 기업문화 자체를 통해 치유하고, 사회민주주의나 “오언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공상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아주 젊은 나이에 역사유물론을 깨닫고 과학적 공산주의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성숙한 인격 덕분이다.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자본주의 산업혁명의 발전과 독일 문화의 발전이 소수의 사람에게 인격을 성숙시키고 완성할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두 부유하고 문화자본이 풍부하며 비교적 건강한 환경에서 자랐고, 잇달아 세계 최고의 대학인 베를린대학교에 갔다. 내가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해설한 영상의 제2편은 바로 “라인 지방 동향인, 베를린대학교 동문”이라는 점을 다룬다.)
5.올바른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소시민은 모두 이 말을 안다. 운으로 번 돈을 노력으로 잃는다. 잘못된 인식에는 대가가 따른다.
올바른 인식은 올바른 입장에서 나온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올바른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